▲ 5공 비리 청문회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지난 21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대기업 8곳의 총수들을 모두 증인으로 부르기로 합의를 했다.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현대차 정몽구, SK 최태원, LG 구본무, 롯데 신동빈, 한화 김승연, 한진 조양호, CJ 손경식 회장이다. 아울러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정조사에서는 이들이 박 대통령과 독대 이후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을 지원했던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할 예정이다.

이는 흡사 지난 1988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등을 불러세웠던 5공 청문회보다 더 많은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다.

우리는 흔히 청문회 중에서 가장 잘된 청문회를 5공 비리 청문회라고 꼽는다. 그때에는 사회적 관심이 5공 비리 청문회에 모두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일약 스타가 된 의원이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활약과 정주영 회장의 자백에 의해 5공 비리 청문회는 정점을 찍었다.

제5공화국 당시 전두환 정권은 지금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과 비슷한 일해재단을 만들기로 했고, 이에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걷어들였다. 결국 이 문제가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6공화국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소야대 정국으로 바뀌자 5공 비리 청문회가 개최됐다.

이 청문회에 대기업 총수들이 불러서 일해재단 모금과 관련된 것을 집중 추궁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기업 총수들이 전두환 정권에게 돈을 줬다는 점을 시인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는 “그래서 국회에 나가서 원하는 대답 하나만 해주면 더 따질 게 없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정주영 씨는, 의원들이 질문을 시작하자마자 너무 쉽게 국회의원들이 바라는 대답을 해 버렸다. '안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다는 것이었다. 첫 마디에 강제성을 시인한 것이었다. 이렇게 첫 질문에 쉽게 핵심이 나와 버리니 의원들은 더 물어 볼 게 없었다. 강제성 여부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고 벼르던 의원들은 잔뜩 준비해 온 질문 준비서를 한 장도 써먹지 못하고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5공 비리 청문회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즉, 5공 비리 청문회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지만 정주영 회장이 의외로 쉽게 강제성을 시인하면서 오히려 쉽게 끝났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에서는 과연 제2의 정주영 회장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제2 정주영 회장이 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박근혜 정부의 국정장악이 완전히 소실돼야 한다. 5공 청문회 당시에는 이미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노태우 정권으로 넘어간 상태이고, 여소야대 정국이었기 때문에 대기업 총수들의 자백이 가능했다.

또 다른 변수는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청문회 스타가 또 나올 것이냐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단순히 증인들을 윽박지르거나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갖고 증인들을 압박해서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그런 점에서 과연 이번 국정조사에서 증인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스타 정치인이 탄생하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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