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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돋보기] 금산사(金山寺)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금산사는 전라북도 김제시 모악산도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이런 설명을 뒤로 물리더라도 금산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두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진표율사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후백제 견훤이다.

금산사는 누가 창건했는지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금산사를 부흥시킨 인물은 진표율사이다. 때문에 실질적 창건자로 여기고 있다.

금산사적(金山寺事蹟)의 기록에 의하면 599년 뱁제 법왕이 즉위해 살생을 금지하는 법을 반포하고 그 이듬해 금산사에 38명의 승려를 득도시켰다고 돼있기 때문에 최소한 599년 정도에 창건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762년(경덕왕 21년)부터 766년(혜공왕 2년) 사이 진표율사가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일으켰다.

이후 935년에는 후백제 견훤이 아들인 신검에게 쫓겨나 금산사에 유폐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견훤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 말기 수많은 호족들이 일어나면서 나라를 세울 기미가 곳곳에서 보였다. 견훤도 호남 지역을 차지하면서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신라땅을 넘볼 수 있었고, 고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됐었다. 927년 신라의 금성을 함락시켜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그해 공산전투에서 왕건은 수천 명의 군사를 잃고 개국공신 신숭겸, 김락 등의 뛰어난 장수들도 잃었다.

그만큼 견훤의 기세는 등등했다. 하지만 견훤이 멸망하게 된 것은 결국 권력 상속 문제 때문이었다. 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에게 자신의 권력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신검이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고, 견훤은 금산사에 유폐됐다.

금산사에 유폐된 견훤은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낸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금산사에서 탈출에 성공한 견훤은 고려로 망명을 하게 되고, 후백제 멸망에 앞장 서게 된다.

역사상으로 자신이 나라를 세우고 자신이 그 나라를 멸망시킨 사람이 견훤 말고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세운 나라를 멸망시킬 때의 그 심정은 과연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결국 고려의 왕건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던 그 심정은 또 어떠했을지 역시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금산사에 유폐되면서 얼마나 통한의 세월을 보냈을지도 궁금해진다. 금산사는 전체적으로 모악산 산세에 포근하게 자리매김돼 있다. 아마도 견훤은 금산사에서 모악산 자락을 바라보며 자신이 지내온 세월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재기를 하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금산사를 탈출해서 고려로 망명했을 때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심정일 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금산사는 견훤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픔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금산사는 고려 문종 33년(1097년)에는 혜덕왕사가 중창해서 86개동 43개의 암자를 설치했다고 한다.

충숙왕 15년(1328년)에는 원명해원 스님이 또 한 차례 중수하고, 임진왜란 때는 뇌묵당 처영스님이 금산사를 거점으로 의승병을 모집하고 왜군에 대항했다.

정유재란으로 호남까지 왜군이 밀려들어오자 금산사는 왜군에 의해 전소됐다가, 인조 13년(1635년) 수문대사에 의해 일부 복구됐고, 1725년에는 환성지안 스님이 화엄대법회를 개최해서 금산사에 1,400여 명의 대중이 몰려듦으로써 위협을 느낀 조정으로부터 제주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현재의 도량은 1961년 월주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일구기 시작해서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보제루 등을 신축하고 미륵전과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금강계단 등은 해체 복원해서 호남의 명찰로 만들었다.

금산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륵전이다. 건물의 규모도 안에 모셔진 불상의 크기도 상당히 크다.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상은 11.82m이고, 좌·우불상은 8.8m이다. 경주 황룡사지나 지리산 화엄사에 있었다는 장육전이 실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예가 금산사 미륵전이다. 이 미륵전 수미단 아래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감춰져 있다.

이외에도 금산사에는 많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다. 미륵전 앞 마당에 있는 노주(보물 제22호)는 아마도 관솔불을 밝히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석련대(보물 제23호)는 불상의 좌대일 것으로 보이는데 불상은 없고 연꽃이 화려하게 새겨진 좌대만 남았다.

금산사 부도전 중앙에는 고려시대 금산사의 중창주인 혜덕왕사의 진응탑비(보물 제24호)가 있으며, 미륵전 옆 언덕 위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보물 제26호)와 5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또, 대적광전 앞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심원암 삼층석탑(보물 제29호), 대장전(보물 제827호), 석등(보물 제 828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11점에 달하고 금산사 전역이 사적 제496호로 지정됐다.

금산사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이곳이 곧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금산사는 모악산의 품에 속 들어온 사찰이기 때문이다.

어기선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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