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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MC칼럼] 다문화와 인종차별박성호 / 동덕여대 교수

[뉴스워치=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다문화사회는 대개 노동력의 국가 간 이동으로 인해 형성되므로 자연히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게 된다. 따라서 이로 인한 인종 차별문제는 다문화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차별이란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를 말하는데 인종차별은 대표적인 다문화사회의 갈등 요인이 되어왔다.

토머스 F. 고셋이 쓴 ‘미국 인종차별사’라는 책이 있다. 1963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지난 1997년 개정판이 나왔는데, 주로 미국에서 진행된 인종이론 논쟁이 어떻게 인종차별에 동원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종교적ㆍ과학적 사상으로 무장한 채 인종차별이론으로 탈바꿈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은 백인이 흑인이나 동양인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뇌용량의 크기, 유전자의 차이 등을 들어 설명하려 하였으나 결국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근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미국 땅에 흑인이 첫발을 내디딘 건 1619년이었다. 버지니아 지방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재미를 보던 백인들은 일손 부족을 해결키 위해 흑인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 해에 흑인노예 20명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온 것을 계기로 흑인노예제도가 시작된다. 당시에 흑인은 소나 말처럼 강한 근육을 가져 부려먹기 좋은 노동력으로 취급되어 주인은 때리거나 죽여도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흑인노예는 그저 말귀를 알아듣는 사유재산으로 취급받았다.

1862년 9월의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으로 이듬해 3월부터 모든 노예가 자유의 몸이 되었고 노예제는 1865년 수정헌법 13조에 의해 종말을 고하였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계속되었고 1960년대 인종차별 철폐의 횃불이 타올랐다. 찬송가 We shall overcome은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기도 하였다. 흑인노예가 미국 땅에 온 지 근 400년 만에 흑인 혈통의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는 수많은 흑인들의 피와 눈물이 점철돼 있었다.

헤겔에 의하면, 사회적 불평등은 기본재산(유산)과 당사자의 기량에 직접 좌우되며, 이러한 조건은 이미 생래적으로 불평등한 육체적, 정신적인 소질의 발달을 차이 나게 하고, 이렇게 생겨나는 차이는 특수성이 활개 치는 시민사회에서는 온갖 사정이나 자의가 곁들여지면서, 개개인의 재산과 기량의 불평등이라는 필연적인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평등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사회는 불안요소들을 해소하려 움직이게 되는데, 이때 불평등을 당하는 집단의 욕구는 이러한 불평등 해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불평등은 다문화 제도 형성과 관련하여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불평등하다는 인식은 당연히 그 사회와의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국내 다문화인구의 대부분이 저숙련 외국인근로자와 결혼이민자, 취업을 위해 입국한 해외동포들로 구성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 중 단순기능인력 비중이 90% 이상으로 OECD 평균인 54%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빈곤층으로 전락한 외국인이 한 공간에 집단적으로 거주할 경우, 언어·경제·문화적으로 주류사회와 격리된 게토가 형성될 수 있으며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은, 인종과 종교, 경제적 계층화가 복합적으로 결합할 경우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갈등 양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체류외국인이 145만 명에 이르는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인종차별금지법 등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다.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인종 등의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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