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이태원 참사로 온 국민이 애통한 가운데, 일부 정치인의 발언들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져 공감능력을 상실했다며 비판 받고 있다. 나는 그들이 의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러 국민정서와 동떨어지게 발언해서 여론의 뭇매를 자초할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그들의 발언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순수 동기와는 조금 다르게 보도된 부분이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찰병력’ 발언은 필자가 직접 행안부에 확인 한 결과, 경찰병력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경찰병력 배치보다 전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도로 이야기를 하려 했다고 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역시 당일 현장에서 직접 수습을 하며 현장을 진두지휘했고, 현장 수습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사과보다 수습이 먼저’라는 메시지가 마치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듯 보도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언과 처세는 비판 받고 있으며, 나 역시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그 메시지는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참사가 발생한 하루 이틀 뒤에 내 놓을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 순간 온 국민은 150여명의 청춘이 한 밤중에 스러져간 참사에 대 충격과 공포,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던 순간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그 놀란가슴을 진정시켜 주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지도자, 그리고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 마음을 공감하고 함께 해 줄 정치인과 책임자를 원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앞 뒤를 어떻게 잘랐던 “경찰배치가 더 있었어도 어쩔 수 없었다” 는 뉘앙스 “할 만큼은 다 했다”는 내 잘못 아니라는 뉘앙스는 국민 정서에 전혀 맞지 않았다. 어떻게 잘라서 쓰던 나오지 말아야 할 워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개인적으로 판단컨대, 늘 지시하는 위치에 있고, 늘 리드하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기에 인색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있는 그 위치를 지키기 못할까 혹은 지지자들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방어적인 처세가 자기도 모르게 더욱 강하게 발동한다. 자기 방어는 자기 합리화가 되고, 자기 합리화를 타인에게 수긍 시키려 할 때 국민 정서와 괴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금 아프고 힘든 상황을 함께 인지하고 내가 먼저 머리 숙이고 몸을 낮춰야 할 때, 지도자들은 그 단계를 뛰어넘어 자기방어 논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의 이 아픔을 함께 공감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인식되고, 더구나 그 참사의 책임선상에 있는 지도자라면 더구나 그 책임을 스스로 회피하는 모양으로 비춰진다.

지도자와 리더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지지자들이 돌아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솔직하게 그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아픔들을 통감한다면 리더와 팔로워간의 신뢰는 더욱 공고해진다고 생각한다. SERVANT LEADERSHIP(서번트 리더십) 이라는 것이 있다. 섬기는 리더십이라는 뜻인데, 팔로워들 즉 국민과 시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희생하는 리더십이다. 팔로워들을 통솔하고 지시하면서 이끄는 것만이 리더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내 책임이 아니더라도 몸을 낮춰 그들을 이해하고 그 편에 서서 그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더욱 강한 리더십일 수 있다. 일반 식당에서도 주인들은 손님에게 서빙을 하며 최대한 그들의 편리함에 중점을 둔다. 어쩌면 내 잘못이 아니고 어쩌면 내 책임이 아니더라도 “죄송합니다. 많이 불편하셨죠” 라고 말하는 주인을 우리는 심심지 않게 보지 않는가. 그것이 serving 이지 뭐 대단한 것이 희생이고 공감인 것이 아니다.

많은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은 지지 않으려 한다. 선거에서도 이겼고, 자주 이기면서 살아왔을 인생일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진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런 부분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다. 특히 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번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나의 합리화를 하는 것이 먼저일수는 절대 없다. 그들은 일정한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선출된 정치인이자 국민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지도자다. 그러면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그 마음을 보듬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먼저다. 그 공감능력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지도자들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함께 느껴주는 공감능력을 갖고 있기를, 앞으로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손수조
손수조

◇ 장례지도사

◇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전)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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