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자신을 신국이라 칭하는 일본에는 정말 많고도 많은 신이 있습니다. 그런 신들이 한순간에 출장을 떠나는 기간이 11월에 들어있습니다. 음력 10월11일에서 17일까지로 올해는 11월10일에서 19일에 해당합니다. 신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사라지는 달이라 하여 ‘칸나츠키’, ‘가미나즈키’, ‘가미나시즈키(神無月)’라고도 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팔백만의 야오요로즈(八百万)의 가미사마(神様)들이 모두 사라지는 거죠. 왜 신들이 사라지는 걸까요?

이즈모대사로 모여드는 신들
이즈모대사로 모여드는 신들

정확하게 말하면 신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1년을 결산하고 내년의 해야 할 일을 정하기 위해 잠시 담당 지역을 떠나 본사 출장을 다녀오는 겁니다. 본사는 하늘에서 일본의 창조주가 처음 내려왔다고 알려진 시마네현(島根県)에 있는 이즈모대사(出雲大社)입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에서 모시는 신은 오쿠니누시노가미(大国主大神)라는 대지를 상징하는 신입니다. 이 신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자녀가 있는데 자녀 신들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일을 하다가 일 년에 한 번 고향인 이즈모에 돌아와 한 해를 마감하는 결산 보고와 새해에 해야 할 일들을 정하는 거지요. 이 신들의 회의를 가미하카리(神議)라고 합니다.

그럼 자신들의 동네에 있는 신사의 신들은 모두 사라지는 걸까요? 아닙니다. 최소한 본사에 초대받을 정도의 등급이 되는 신들은 가지만, 그렇지 못한 신들은 지역의 신사에 그대로 남겨집니다. 출장 간 신을 대신해서 집을 지키는 신을 루스가마(留守神)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대접받지 못한 작은 신들을 위해 도미 등 고가의 음식을 차려 공양을 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공덕이 나중에 더 큰 공덕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 다른 지역과 달리 이즈모 지방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모인 신들처럼 신들의 세상이 펼쳐지겠죠. 그래서 이즈모는 11월을 가미아리즈키(神在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신들의 방문을 축하하며 「진자이사이(神在祭)」라는 마츠리를 엽니다. 보통 마츠리라고 하면 시끄러운 음악과 함성, 춤, 화려한 옷차림 등을 연상하기 마련하지만, 「진자이사이(神在祭)」는 신들의 회의를 방해해선 안 되니까 지역 사람들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마츠리입니다.

그럼 신들은 무슨 내용을 회의하는 걸까요? 신들은 내년의 농사, 날씨, 술맛도 정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운명과 인연(縁), 결혼에 관한 회의입니다. 신들은 누구와 누구를 결혼시킬 것인가. 누구를 만나게 할 것인가 등 주로 인연에 관한 것을 토론합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는 사람들의 인연을 묶어주는 엔무스비(縁結び)의 총본산(総本山)이기 때문이죠.

상상해 보세요. 회의에서 어떤 신이 “우리 동네에 참 착한 모솔의 청년이 있는데, 어디 괜찮은 처자 없나? 그러면 옆에 앉아있던 신이 ”아 우리 동네에 참한 아가씨가 있는데 지난번에 찾아와서 남친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러 왔더라고. 만나게 해줄까? 뭐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요? 그러고 나면 혹시 영화에서처럼 비행기 옆좌석, 혹은 버스, 지하철, 아니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 어떤 곳에서 운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죠. 그걸 우린 우연이라 하지만 사실은 신들이 회의에서 두 사람이 만날 운명을 이미 정해놓았던 겁니다.

혹시 근일 누군가를 만났다면 필경 당신이 평소에 쌓아둔 덕을 높이 산 신들이 당신이 원하는 운명의 사람을 보내준 겁니다. 운명의 사람을 만났다면 주저 없이 고고고.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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