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요즘 뭔가 따뜻한 것이 급 당기는 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가 봅니다. 학창시절, 학교 근처의 떡볶이집에 들러 “아줌마, 떡볶이랑 순대, 튀김, 1인분씩 주세요.”라고 하면 미리 튀겨 놓은 오징어, 야채, 새우, 고구마튀김을 다시 튀겨 흰점이 박힌 초록색 플라스틱 접시에 비닐을 씌워 내주곤 했습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의 판화에 묘사된 텐뿌라 가게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의 판화에 묘사된 텐뿌라 가게

튀김을 예전에는 텐뿌라(天ぷら)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텐뿌라가 곧 튀김은 아닙니다. 요리의 이름일 뿐이죠. 우리는 새우 튀김, 오징어 튀김, 닭 튀김 등 ‘재료+튀김’으로 기름에 튀긴 걸 다 튀김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 기름에 튀긴 음식을 아게모노(揚げ物)라고 합니다. ‘튀기다’라는 동사, 아게루(揚げる, あげる)의 명사형 아게(揚げ)에 튀기고 싶은 그 어떤 모노(物)를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텐뿌라(天ぷら)’라는 요리의 이름도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겁니다. 1543년 8월 25일, 백여 명의 포르투갈(ポルトガル) 선원을 태우고 중국으로 향하던 동인도회사의 배 한 척이 일본 규슈 다네가시마(種子島)에서 좌초됩니다. 이 섬의 영주는 요상하게 생긴 외국인들을 내치기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기한 물건, 바로 총에 관심을 둡니다. 총포의 위력에 놀란 영주는 이들에게 금 2000량을 주고 총을 사고 사용법도 배웁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해준 총을 분석하고는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은 총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죠.

다른 동양의 나라들과 달리 비교적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일본인에게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 선교사를 태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선이 수시로 일본을 찾습니다.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한 것이 1549년인데, 튀김이 일본에 전해진 것도 아마 이때쯤이 될 겁니다. 이들은 일본을 들락날락하며 다양한 서양의 것들이 일본에 전해줍니다. 고춧가루, 고구마, 카스텔라, 쿠키, 와인, 대파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이들은 전해진 음식 앞에는 남만(南蛮, なんばん)이라는 말이 붙었는데, 여기서 남만(南蛮)이란 남쪽의 야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남만이라는 말이 들어간 카레 난방(カレー南蛮), 오리 난방(鴨南蛮), 니쿠 남방(肉南蛮) 등의 특징은 바로 대파가 들어있다는 겁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해준 요리 중 하나가 우리의 아련한 추억 속에도 있는 텐뿌라(天ぷら)입니다. 텐푸라라는 말은 4계절마다 각각 3일씩 고기를 먹지 않고 금식을 하며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쿠아투오르 템포라(Quatuor Tempora)라는 말에서 온 거라고 하네요. 이후 ‘템포라’는 일본인들의 발음에 맞게 텐뿌라(Tempura)로 바꿨는데, 한자로는 ‘天麩羅’라고 썼습니다. 아마 한자가 너무 어렵다 보니 그냥 텐뿌라(天ぷら)라고만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원래 포르투갈식 튀김은 두꺼운 튀김옷을 입혀 튀기지만, 일본의 텐푸라는 새우, 가지, 단호박 등 원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속이 다 보일 정도로 최대한 얇게 튀김옷을 입혀 튀겨 바삭바삭한 식감을 살립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텐뿌라 독살설」이 있을 정도로 텐푸라는 귀족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습니다. 텐푸라가 대중화된 것은 기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지금은 일식 전문점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 고급요리가 돼버렸지만, 당시에는 포장마차에서 간단하게 먹는 간식이었습니다. 바쁜 도쿄인들이 바로 집어먹을 수 있도록 꼬치에 꽂은 튀김(串に刺した天ぷら)이 야타이(屋台, 포장마차)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림에서 히로시게가 그린 판화에도 도쿄 니혼바시의 텐뿌라 가게가 묘사된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얇은 튀김옷을 입힌 튀김은 간장 소스, 그러니까 쯔유를 찍어 먹었는데, 생각해 보면 요즘 일본식 텐뿌라와 먹는 방법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바삭바삭한 식감과 입술에 살짝 묻는 기름기! 그 고소한 텐뿌라의 유혹은 참으로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튀김이면 어떻고 텐뿌라면 어떻겠습니까. 속 시끄러운 것들을 다 잊고 바삭함에 홀려보는 봅시다. 저는 ‘깻잎 텐뿌라’와 ‘가지 텐뿌라’가 좋은데 여러분은 역시 새우일까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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