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시원한 가을바람이 여름내 지친 몸과 마음을 식혀주나 싶더니 태풍으로 또다시 후덥지근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추석 연휴는 끝났지만, 그래도 10월의 휴가가 남아있으니 섣부른 실망은 금물입니다. 최근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가 베트남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거리가 가까운 일본일 겁니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여행에 싫증이 나신 분들이 영화나 드라마로도 잘 알려진 홋카이도의 오타루, 하코다테, 에메랄드빛 바다로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리는 오키나와 등을 찾는다고 합니다.

오에겐자부로(大江/健三郎) 오키나와 노트
오에겐자부로(大江/健三郎) 오키나와 노트

오늘은 오키나와(沖繩)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홍길동이 혁명군을 이끌고 신분 차별이 없는 이상적인 나라, 율도국을 세우는데 그 나라가 사실 오키나와였다는 주장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일본 최남단 섬으로 올 태풍에 여러 차례 수난을 겪은 오키나와의 원래 이름은 류큐(琉球)입니다. 류큐는 오랫동안 중국과 중개무역을 하던 독립국이었으나 17세기, 사츠마번, 지금의 규슈 영주의 침략을 받아 간접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명치유신 이후 홋카이도와 마찬가지로 강제로 일본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키나와로 지명이 변경된 류큐는 류큐의 고유언어, 문화, 풍습이 금지되고 일본어 및 일본 복식 등이 의무화되었으며, 일본교육 과정이 강제되어 결국 일본 역사로 편입됩니다.

오키나와의 가장 큰 불행은 오키나와전투(沖縄戦)입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미군은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일본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려 했습니다. 일본본토에서는 가능하면 미군을 오키나와에 오래 묶어두는 전략을 세우는데 그건 최악의 경우 오키나와 주민이 다 죽어도 좋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2500명의 사상자를 낸 44년 10월 10일 공습(10·10空襲)으로 시작된 민간인 학살과 미군 공습이 다음 해 45년 3월 말에 본격화되어 3개월간 이어지는데 이걸 오키나와전투라고 합니다.

이 전투로 미군 1만 2천 명. 일본군 약 19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중 본토에서 온 일본군(조선인 포함)은 6만 5천 명이고 나머지는 오키나와에서 차출된 군인이거나 민간인이었습니다. 섬 주민의 3분이 1이 사망했는데 그조차 통계적인 숫자에 불과합니다. 당시 일본군은 생포되느니 스스로 자결하라는 센진 군(戦陣訓, せんじんくん)을 군인에게 주입시켰는데, 큰 부상으로 동굴에 갇힌 군인들에게 독극물을 배포하여 ‘집단 자결(集団自決)’을 종용했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오키나와전투의 사령관, 우시지마 미츠루(牛島満)도 자결했습니다. 일본군은 주민, 관료, 군인이 똑같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라는 「군관민 공동공생(軍官民共生共死)」지침으로 군인은 물론 주민들이 미군에 투항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미군의 공격에 대항하여 주민들의 집단자결(集団自決)을 종용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집단자결을 강요했다는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해 역사 속에서 아예 지우려 했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가 『오키나와 노트(沖縄ノート)』라는 책을 통해 이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오에는 일본에 방치된 오키나와의 고통을 마주하며 이 사건에 깊은 분노를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키나와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당시 일본군 지도부와 지금의 일본인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를 묻었습니다.

오키나와전투는 그야말로 일본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버려진 돌이었습니다. 패전 이후에도 일본 왕은 전범으로 법정에 서지 않기 위해 또다시 오키나와를 미국에 먹잇감으로 던져줬습니다. 그러다 1972년, 베트남전쟁으로 야기된 일본본토에서 반미운동이 거세게 일자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영토로 복귀시킵니다. 그때까지 오키나와는 괌처럼 일본인들조차 여권을 가지고 가야 하는 미국영토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키나와의 불행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약 10%는 미군기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각종 소음과 범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오키나와 주민은 미군 기지를 자신들에게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와 하얀 백사장에 더는 그들의 피눈물이 뿌려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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