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한 명의 여성이 죄없이 살해되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전모 씨(31)가 전 직장 동료인 역무원 A 씨(28)를 흉기로 찔러 사망케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입사 동기로, 경찰 조사에서 오래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근무하던 신당역에서 위생모를 쓰고 약 1시간 10분 동안 기다리다가, 피해자가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러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는 화장실에 비치된 비상벨을 눌러 도움을 요청하였고, 직원과 시민들이 가해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그러나 피해자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이미 심정지 상태로, 결국 사망했다. 이 화장실은 서울시가 특별히 “여성이 행복한 화장실”이라 이름 붙인 곳이었다.

이 끔찍한 살인사건을 두고 몇 가지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가해자의 잔인함에 분노하며, 또 아까운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첫 번째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난 2019년부터 스토킹을 하고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이미 두 차례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지속해서 피해자를 스토킹과 불법 촬영 등으로 괴롭히다, 2021년 10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했고, 범죄 혐의가 인정돼 지난 2월과 7월 각각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이 사회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두 번째는 가해자는 수사가 시작된 후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위 해제됐으나, 회사 내부망 접근 권한이 유지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피해자의 근무지를 알아내고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어 직위는 해제되었지만, 범죄 혐의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엔 어떠한 제약도 없었다. 그리고 그간, 위협에 시달렸던 피해자는 방치되었다. 시민들은 "순찰할 때도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같이 다녔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세 번째는 법원이 지난해 10월 경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였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서울 유명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며 회계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법원이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전문직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피의자는 도망할 우려가 적다고 기각하는 때가 있어 아마 이 부분이 영장 기각에 참작됐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그때 구속만 됐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구속영장 기각한 영장 담당 판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 등의 이야기도 들린다.

네 번째는 스토킹 범죄 가해자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보호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올해 초 A 씨가 고소한 스토킹 혐의 관련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겠다”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어느 스토킹 가해자가 계속 연락하겠다고 진술하겠는가?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을 피하기 위한 이러한 진술을 믿고 실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해자는 지난 15일 살인 혐의에 대한 경찰 조사에선 "피해자가 합의해주지 않아서 보복성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경찰은 범죄자에게 농락당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상당수의 시선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한 야당 소속 서울시의원은 사건 발생 이틀 후인 16일 시의회에서 '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가해자가) 폭력적 대응을 했다"고 발언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시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시정 질문을 하던 중 서울시와 각종 사업소 등에서 민원응대를 하는 직원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을 언급했는데 "다음 주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는데 아버지의 마음으로 미뤄봤을 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여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이 안전해야 한다. 위험에 처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안전을 방해하는 것은 여성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한 안이한 대처이다. 이는 여성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불감증에서 비롯된다. 경찰이 긴장했더라면, 소속 회사가 사건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조처했더라면, 법관이 신분에 구애받지 말고 범죄 그 자체를 평가했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여성의 안전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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