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처서(處暑, しょしょ)가 지나니 언제 더웠나 싶을 만큼 아침저녁으로는 찬 공기를 품은 바람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처서(處暑)의 처(處)는 장소라는 의미 외에도 ‘멈추다’라는 의미도 있어, 처서를 지내고 나니 더위가 점차로 줄어드는 그야말로 〈처서 매직〉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8월의 끝자락, 그 뜨거웠던 ‘나츠마츠리(夏祭り, なつまつり)’의 열기도 끝난 시기입니다. 코로나로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본 여름을 수놓는 최고의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마츠리입니다. ‘마츠리(祭り)’는 제사의 제(祭)자를 쓰고 있지만 제사가 아닌 서양에서 볼 수 있는 페스티벌에 가깝습니다.

구마가야 우치와마츠리(熊谷うちわ祭)
구마가야 우치와마츠리(熊谷うちわ祭)

마츠리는 869년 교토의 ‘기온마츠리(京都祇園祭)’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역병으로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위령제였습니다. 역신(疫神)을 없애기 위해 66개의 창과 ‘다시(山車, だし)’라는 신을 태우는 수레를 만들어, 그곳에 역신을 옮긴 뒤 모두 강물에 버리거나 소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위령제에서 신사의 신이 마을을 순례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신사를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나던 신이 직접 수레를 타고 사람들을 찾아가는 서비스로 바뀐 겁니다.

비가 많고 습한 일본은 특히 여름은 식중독을 비롯한 각종 역병이 유행하였는데, 이걸 신의 저주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 역병을 퇴치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여름에는 태풍이나 해충 등으로 성장한 작물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서 「액막이」용으로 행해졌습니다. 도쿄, 오사카, 교토 등 대도시에는 불꽃놀이와 뱃놀이가 더해진 성대한 여름 마츠리가 열립니다. 7월 초에 열리는 교토의 ‘기온마츠리(祇園祭)’를 시작으로 오사카(7.24・25)의 텐진마츠리(天神祭), 8월에는 도쿠시마(徳島)의 아와오도리(阿波おどり, 8.12-15), 아오모리(青森)의 네부타마츠리(ねぶた祭, 8.2-7) 등, 한 번은 가보고 싶은 유명한 축제들이 연이어 열립니다. 그중 대표적인 여름 축제인 교토의 ‘기온마츠리(祇園祭)’와 '아와오도리'의 기원은 각각 '액막이'와 '진혼'에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신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속 신들처럼 근엄하지도, 그다지 선하지도 않습니다. 모습이나 능력은 사람과 다르지만, 마음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엄격하게 치러지는 제의도 있지만, 마츠리는 신을 최대한 즐겁게 해서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술과 노래, 음식과 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을 태운 다시는 최대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야 하고 그 다시 위에는 예쁘게 분장한 사람이나 인형, 화려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올라탑니다. 일종의 집단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는 나츠마츠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여름밤을 수놓은 불꽃놀이일 겁니다.

일본의 신은 하늘에서 산으로 강림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옵니다. 일본의 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해서 무엇인가를 타고 내려오는데 주로 가늘고 긴 막대기를 타고 내려옵니다. 어릴 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연필이나 볼펜 등 필기도구를 마주 잡고 ‘분신사바’라는 주문을 외워 귀신을 부르는 것을 해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일본의 신이 타고 내려오는 것을 요리시로(依り代)라고 합니다.

커다란 마츠리도 좋지만, 동네에서 열리는 작은 마츠리도 정겹습니다. 동네에서 열리는 마츠리를 위해 사람들은 1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어린이회, 청년회, 부녀회 사람들이 각기 맡은 일을 합니다. 청년회 사람들은 ‘다시(山車, だし)’ 태운 수레를 끌고 마을의 구석구석을 돕니다. 흥겨운 악기 소리와 떠들썩한 고함과 간단한 손동작으로 추는 춤사위가 여름밤을 수놓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과 술, 즐거운 춤으로 다시(山車)를 맞이합니다. 더운 여름밤, 유가타를 입고 오랜만에 만나는 이웃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동네 마츠리, 다시 한번 그 여름 속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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