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더운 날씨가 되자 자연스레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찾는 날이 많아집니다. NO JAPAN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편의점에서는 어렵지 않게 일본 맥주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일본 맥주 하면 기린 맥주(キリンビール)와 아사히 맥주(アサヒビール)가 유명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는 삿뽀로 맥주(サッポロビール) 입니다.

(사진 왼쪽)개척사가 사용한 북진기, (가운데)1877년 삿뽀로 맥주상표, (오른쪽)한국판매용 삿뽀로 맥주
(사진 왼쪽)개척사가 사용한 북진기, (가운데)1877년 삿뽀로 맥주상표, (오른쪽)한국판매용 삿뽀로 맥주

맥주 상표로 사용된 삿뽀로(札幌)는 한여름에도 20도 안팎의 쾌적한 날씨를 자랑하는 광대한 설원의 대지이자 일본 최북단, 홋가이도(北海道)의 도청소재지로, 이 지역의 선주민인 아이누(アイヌ)말로는 ‘건조하고 광대한 땅’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홋카이도는 우거진 삼림과 습지, 화산재가 펼쳐진 추운 지방으로 농사에는 도무지 적합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1860년대 사할린에 러시아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오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 정부는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여 홋카이도 개발을 위한 개척사(開拓使, 1869)를 설립합니다. 이들은 홋카이도에 살고 있던 선주민, 아이누를 북쪽에, 그리고 새롭게 이주해 들어오는 일본인은 남쪽에 살게 했습니다. 당시 홋카이도는 주택, 교육, 토지 등이 거의 무상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명치 유신으로 신분을 상실한 무사나 관료, 토지를 갖지 못한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개척사는 홋카이도를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을 만들기 위해 미국에서 농업전문가를 영입해, 다양한 서양식 계획농법을 시도합니다. 그중 하나가 맥주의 주 원료인 보리와 호프입니다. 개척사는 1876년 맥주양조소(開拓使麦酒醸造所)를 설립하고 다음 해인 1877년, 일본에서 최초로 재배된 보리와 호프로 맥주를 홋카이도에서 생산합니다. 그것이 삿뽀로 맥주입니다.

한 번쯤 삿뽀로 맥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삿뽀로 맥주에 새겨진 커다란 별 모양 마크를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1977년에 개발된 구로라벨시리즈인 노란 별 마크가 더 친숙하지만 삿뽀로 맥주를 상징하는 것은 빨간 별 모양 「★」마크입니다. 단순하고도 임팩트 있는 이 붉은 별 마크는 바로 개척사(開拓使)의 상징으로 개척사와 관계된 모든 건물에는 이 붉은 별 마크가 사용되었습니다.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삿뽀로의 관광명소, 삿포로 맥주박물관 입구에도 붉은 별 마크가 창문에도, 굴뚝에도, 지붕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홋카이도를 개발하기 위해 파견된 개척사가 만든 맥주라는 의미로 삿뽀로 맥주에 붉은 별 마크는 집어넣은 것이지요. 1882년 개척사가 폐지되면서 1887년 맥주 제조는 민영화되었지만 삿뽀로 맥주에는 여전히 개척사의 전통을 이어받아 붉은 별 마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새겨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 최초의 생맥줏집은 도쿄 에비스에 생긴 ‘에비스 빌딩 비어 홀(恵比寿ビール BEER HALL)’입니다. 도쿄에 가신다면 이곳에 들려서 오래된 일본 맥주 맛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