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얼마 전 방탄소년단(BTS)이 데뷔 9년 만에 단체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계획했던 대규모 월드투어가 무산되고, 싱글로 화제성을 노린 '다이너마이트' '버터' 등이 글로벌 히트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리더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이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질 않고, 계속 뭔가를 찍어내게 한다."며 "할 말을 만들어낼 시간이 너무 적은데…이런 걸 얘기하면 무례한 것 같고, 팬들이 너무 미워할까 봐…내가 쉬고 싶다고 하면 죄짓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간밧데이키마쇼이(がんばっていきまっしょい) 포스터
간밧데이키마쇼이(がんばっていきまっしょい) 포스터

우리는 언젠가부터 “나 너무 힘들어. 번아웃된 것 같아. 좀 쉬고 싶어”라고 말을 하면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격려, 지지한다며 ‘파이팅(Fighting)’을 외칩니다. “파이팅이 넘친다.”, “파이팅을 기원한다.” 등 시험이나 시합, 오디션을 앞둔 상황이 아닌데도 파이팅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힘내’기 위해서는 나와도 혹은 그 누구와도 싸워야 하는 세상인가 보다라는 생각에 좀 씁쓸해집니다.

‘아자’을 ‘힘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입니다. 언제부터 ‘힘내’라는 의미의 ‘간밧떼(頑張って)’ 대신 ‘파이토(ファイト)’를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는데, 그 말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을 끝까지 써버리면서 버티는 ‘간바루(頑張る)’를 하지 않지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간밧떼(頑張って, 힘내)’. ‘파이팅’이라고 하지만 ‘간밧떼(頑張って)’를 그만둘 수는 없는 걸까요?

일본에서는 너무나 자주 ‘간밧떼(頑張って, がんばって, 힘내), ’간밧떼 구다사이(頑張って下さい, がんばってください, 힘내세요)‘, ’간바로(頑張ろう, 힘내자)‘, ’간바레(頑張れ, 힘내라)’ 등을 말합니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재미있게 놀다 와”라는 말 대신 양가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간바루하고 와라(頑張ってきて, 간밧데키떼)”라고 합니다. 도대체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뭘 어떻게 간바루, 파이팅해야 하는 걸까요?

『몸짓의 일본문화(しぐさの日本文化)』를 집필한 타다미치타로(多田道太郎)는 간바루가 일본에서 호감을 주는 말로 사용되게 된 계기로 1936년에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을 꼽습니다.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던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장신의 서구선수들을 일본 선수가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목이 터져라. 간바레(ガンバレ)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11일이 ‘힘내는 날(간바레노히, ガンバレの日)’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패전 이후 더욱 강해졌습니다.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간바루(頑張る)’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특수를 누리며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대, ‘간바루’하면 누구나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고,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아무리 간바루(頑張る)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2000년경부터 힘들게 애쓰지 않는 ‘간바라나이(がんばらない)’ 삶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하면 할 수 있어(やればできる!), ”힘내서 해봐(頑張ってやりなさい)“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이걸 반복해서 듣게 되면 “안되는 건 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구나”,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라서 안되는 거야”라는 생각에 빠지게 한다고 합니다.

간바루(頑張る)는 원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회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필사적으로 간바루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누군가를 위해 간바루하는 것이 강요되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 공동체가 잘 굴러가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간바루’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간바루’하지 못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랜 연습생과정을 거쳐 데뷔하는 아이돌이나 오디션에 합격하여 데뷔하는 가수들은 그들의 성장 과정을 가감 없이 팬들에게 보여줍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언제 어디서든 늘 성실하게 ‘간바루(頑張る)’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방탄은 항시 한결같은 열정으로 성실히 노력하고, 멋진 춤과 노래 실력으로 멋진 무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바른 인성까지 갖추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난민, 환경, 인종차별문제까지 관심을 두고 활동을 하는 방탄은 이들의 노래 〈피땀 눈물〉처럼 “내 피땀 눈물도 내 몸 마음 영혼도”다 갖다 바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잠시 쉼표를 선언하는 방탄소년단에게 죽기 살기로 달리고, 버티는 건만이 최선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팬들은 기다릴 겁니다. 푹 쉬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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