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오스트리아 주거복지의 상징은 빈에서 노동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지은 임대주택이다. 1930년대에 이미 세탁기가 구비된 공동 세탁 시설이 있었고 의료 시설과 식료품점, 회의실과 도서관을 갖췄다.

단지 내 시설에서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주기 때문에 부모의 퇴근 후 시간은 한결 여유로웠다. 집이 크다고 할 순 없지만 3, 4인 가족에게 얼마만큼의 공간이 필요한지 그릇 수까지 계산에 넣은 여성 건축가의 섬세한 손길 덕분에 매우 효율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꿈의 주택은 10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거뜬히 제 기능을 한다.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임대주택 홀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는 아파트 단지 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소셜믹스(social mix)를 주장하며 임대주택 공급을 밀어붙이고 있으나 사회 갈등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입주를 앞둔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최근 임대가구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견본주택과 달리 특정 동 외벽 색을 달리하면서 임대동 차별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강남권 재건축단지의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이 이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구는 열심히 일하고 대출받아서 산 집인데 누구는 싸게 들어오면 열 받는 게 당연하지. 돈 없으면 억지로 서울 신축 들어오지 말고 수준에 맞는 곳에 살아라.’

소셜믹스를 다룬 뉴스 등에서는 ‘왜 임대 아파트를 고급단지에 짓게 하느냐. 차별이 있더라도 좋은 단지 신축 사니까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공공임대 입주민을 비하하는 댓글이 흔하다.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 사업 때, 임대주택을 더 짓겠다고 하면 용적률을 높여준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다. 그런데 많은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용적률 혜택을 받은 뒤 분양세대와 임대세대를 누가 봐도 차이가 나도록 짓거나 아파트 경로당을 따로 분리시켜 놓는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고층 아파트로 들어가는 정문 출입구 밖에 저층 아파트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다. 임대아파트가 75%인 이른바 임대 동이다. 건물 높이도 확연히 낮고 색깔도 다르다.

주택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하거나 임대주택을 지을 때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구분하지 말고 전체를 하나로 살 수 있게 섞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임대 세대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경우 용적률을 300%까지 올릴 수 있다. 용적률이 높을수록 연면적이 많아져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데, 임대주택을 지으면 일종의 인센티브를 받는 셈이다.

우선 소셜믹스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완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그간의 임대주택 정책은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소득이 적은 저소득층만 대상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소득이 괜찮은 사람들은 입주를 꺼려했다. 거기다 임대주택 대부분이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심 외곽에 지어지다 보니 입주자들은 출퇴근에 불편을 겪어야 했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입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하자는 것이 소셜믹스 아파트의 목적이다. 사회통합 차원에서도 방향을 올바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정책에서나 크고 작은 문제점은 있게 마련이다. 아파트를 분양 받은 입주자들이 임대 입주자들에게 단지 내 편의시설 사용을 제한해 종종 갈등을 빚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서울시는 동호수 공개추첨제를 전면 실시한다. 공개추첨제는 분양세대를 배정한 후 남은 세대에 공공주택을 배치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전체 주택 동호수 추첨에 분양과 공공주택세대가 동시에 참여하는 제도다.

공공주택은 그간 단지 내 별동이나 분양가구에 공급하고 남은 물량으로 배치돼 왔다. 공동편의시설에도 공공주택 입주자는 이용이 제한되는 일이 많았다.

앞으로는 분양과 공공주택 세대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공개 추첨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사업시행계획에 반영해 시행한다. 또한 대부분 소형 위주였던 공공주택 평형도 전용 84㎡ 등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면적으로 확대된다.

특정 지역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수요가 그쪽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수요가 많은 곳에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 지속적이면서 빠르게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주택문제 해결의 완벽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소셜믹스와 같은 묘안을 찾아야 한다. 

김웅식 정책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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