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서울 지하철 뚝섬유원지역과 샛강역 근처에는 기존 건축물 입주민들이 건축물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있다. 반대 이유는 신축 건물이 들어오면 일조권뿐만 아니라 조망권을 훼손해 건축물 가치를 떨어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집을 찾아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유난스레 전망을 강조하는 진행자들을 본다. 예컨대 거실 창문을 통해 호수를, 안방 창문을 통해서는 숲을, 또 어떤 창문을 통해선 도심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자랑한다.

어떤 창문 앞에 서느냐에 따라 그 집은 호수 전망의 집이기도 하고 숲 전망이나 도심 전망의 집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 창문을 여니 아이들 놀이터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거실 창문으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과 낮은 빌라들을 볼 수 있다. 내 집은 놀이터 전망의 집이라고 할 수도 있고 골목 전망의 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파트 청약 공고문을 읽다 보면 층에 따라 분양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층이 높을수록 분양가도 올라가는 게 보통인데, 이유는 전망 때문이다. 집안에서 어떤 풍경을 볼 수 있느냐가 경제적 가치로 계산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집 주변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집의 가치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달라진다. 창문 앞에 서서 무엇을 보는지가 어떤 집에 사는지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10여 년 전 방송을 통해 알려진 일명 ‘묘지 뷰(view) 아파트’가 있다. 당시 방송국에 사연을 보낸 제보자에 따르면 아파트 거실에서도 안방에서도 아이들 방에서도 공동묘지가 보인다는 거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밤에 잠이 들 때도, 공부방에서 책을 보다 창밖을 봐도 묘지가 보인다고 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게 아니라 묘지를 분양받았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자신들이 “묘지기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묘지가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집은 모두 117가구였다. 인천에 자리한 이 아파트는 총 588가구인데, 전체의 20% 정도가 반갑지 않은 묘지 조망권을 얻은 셈이다. 심지어 4개 동은 수십여 기의 묘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지어졌다. 나머지 동에서도 묘지 일부가 보였다.

대기업 건설사가 짓고 유명 브랜드 아파트라 믿고 계약했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입주민들은 ‘사기 분양’이라고 주장했다. 공동묘지가 있는지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하고, 일부는 묘지가 있다는 것은 들었는데 건설사 측이 몇 개 없다며 둘러댔다고 말했다. 묘지가 그렇게 많은 곳에 아파트를 지어 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얘기다.

‘묘지뷰’라는 황당한 조망권 정보는 소비자에게 분명하게 제공돼야 했다. 하지만 건설사는 분양 성공을 위해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부정확하게 표현했다. 그것도 분양 팸플릿에 아주 작은 글씨로 찾기 힘들게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민들이 입게 됐다.

같은 묘이지만 묘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아파트의 운명은 갈린다. 보이는 풍경이 ‘묘지’로 불리는가 아니면 ‘왕릉’으로 불리는가에 따라 아파트의 운명이 달라지는 걸 이즈음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를 보면서 실감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주변의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를 둘러싼 갈등이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건설사가 아파트 공사를 재개하도록 한 법원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함으로써 아파트 운명은 법정공방을 통해 판가름 날 전망이다. 특히 공사 중지 명령에 대한 본안 소송이 제기돼 양 측간 법적 분쟁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은 2014년 아파트 용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가 김포시청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고,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를 거쳐 공사를 시작한 만큼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아파트 단지의 입주 예정일이 오는 6~9월이다. 법원이 문화재청, 인천 서구청, 건설사 중 누가 책임져야 할지는 철저히 가리겠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애꿎은 입주예정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 푼 두 푼 힘들게 돈 모아 분양을 받은 집에 입주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입주예정자들에게 실망감을 줘서는 안 될 것이다.

건설사들과 인천 서구청은 토지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받으면 건물 신축 시 별도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문화재청은 토지와 건물의 현상변경 절차는 각각 거쳐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세계문화유산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산 자의 보금자리를 보호하는 것도 문화유산 못지않게 중요해 보인다.

김웅식 정책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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