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이우탁 기자]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고(古)기후에 대한 각종 자료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료의 어떤 순서와 구조 속에서 '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기표가 각인돼 있거나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PM)에서 "과거와 미래의 온실가스(온실기체) 배출로 인한 많은 변화들 (되돌릴 수 없다), 특히 해양(海洋)·빙상(氷床)·세계 해수면의 변화는 수 세기에서 수천 년 동안 되돌릴 수 없다"라고 기술된 판단에서도 그 기표(記標)는 잘 드러나 있다.

서술어나 수식어로 쓰이는 '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단어는, 삼라만상과 인간에 대해 고찰하거나 표상할 때 종종 따라붙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나 대상이 소멸하지 않는 한에서) 자연법칙과 존재론에 속하는 시간의 방향성과 역사적 운명을 규정하는 '비가역성(非可逆性)'이라는 고유한 의미가 내재돼 있는 단어일 것이다.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기후변화를 머릿속에 그려보면, 분명 그 그림은 비가역적인 자연현상과 과정들의 단순한 총체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또 그것은 순수하고 거대한 실증적 데이터나 정보, 단순한 논리의 총체만으로는 속속들이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어떤 '사실'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논고>(이하 '논고')에서 세계가 일어나는 일들, 즉 '사실'들의 총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을 순전히 받아들여 지구(세계) 기후에 대입해보면, '기후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혹은 '지구온난화는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사실', 즉 일어나는 일이 된다.

나아가 세계를 이루는 '사실'들이 논리적 공간 속에 있고, '사실'들의 총체는 일어나는 일과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 아닌 모든 것도 확정하고 있다. 그의 생각에 좀더 들어가 보면,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고 '사태'는 대상(사물)들의 결합이 된다.

여기서 '사실'은 시간순서에 따라 단순하게 배열된 사태들의 존립(객관적 실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태'는 그저 모여 있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사실'은 시·공간성뿐만 아니라 연결성·관계성·개연성에 연루돼 있는 어떤 사태들의 존립이며, '사태'는 사물들이 어떤 방식과 속성으로 결합돼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존재론'에 대해 명제논리학적 관점에서, 세계는 '긍정사실'들과 '부정사실'들의 총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부정사실'은 실재적이라고 한다. "사태의 부재도 실재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사태의 부재도 세계의 일부이기에 실재적이라고 간주한다.

이에 대해 예를 들어 분석해보면 "P1: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유발한다 P2: 인간 활동에 기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다 P3: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온실효과 강화와 상관관계가 있다 S: 따라서 온실효과가 강화되는 만큼 지구 평균기온은 높아질 것이다"에서 P1·P2·P3은 각각 긍정사실로서 '참' 명제며, 실재적이다.

~P3("... 상관관계가 없다": not P3)은 실재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 상관관계가 없다"라는 ~P3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사태'이기는 하지만 실상, '...상관관계 있음'이라는 사태의 존립인 P3에 대해 '부재하는 P3(사태)'을 의미하는 것이 되므로, ~P3은 세계를 이루는 '사실'의 일부가 될 수 없다.

그런데 P3("... 상관관계 있음")은 ~P3("... 상관관계 없음")이라는 부정사실과 '상관관계 있음'이라는 '사태의 부재함'까지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P3이 내포한 '사태의 부재함'은 논리적으로 실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사실'과 '부재하는 사실'이 다른 것처럼 '사태의 부재함'과 '부재하는 사태'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들은 경우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서로 같을 수 있지만 완전한 동형물이 될 수는 없다. 가령, ~P3이라는 부정사실이 참 명제더라도 현실에서 실증적·물리과학적 방식을 통해 사실을 확정할 만한 충분한 방식과 규모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실재하는 사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1993년 어느 봄날 필자
1993년 어느 봄날 필자

현재 학계 전문가들은 앞에 언급된 P1·P2·P3·S 모두 실재적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P1·P2·P3·S 각각 및 결합체의 실재함(존립함)이 충분히 실증되고 입증됨에 따라 인간 활동에 기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상관관계 있음이 실재하는 '사실'로 확정돼 세계의 일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와 지구온난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한때 회의론을 펼쳤던 일부 전문가들조차도 지구온난화의 상관관계가 실재함을 인정하고, 인간 활동에 기인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주요한 연구결과들을 포함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1워킹그룹이 내놓은 기후 예측 모델과 과학적 근거들이 질적·기술적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연적 기후 순환의 일부일 것이라고 주장한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적잖이 남아 있었다. 신뢰할 만한 많은 관측과 실험, 시뮬레이션 등이 현재의 지구온난화가 과거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일관성 있게 지목하고 입증해 왔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수정하지 않았었다.

그때쯤, 과거의 기후변화가 국지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산업화 이후에 인류가 유발한 전(全)지구적 온실기체 효과간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등장했다.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들 중 하나는, 스위스 베른대학 지리학연구소의 라파엘 노이콤 박사 연구팀이 내놓은 논문이 그것이다. 논문은 2019년 7월 네이처와 외신 등을 통해 전문가와 대중들에게 소개됐다.

논문에 의하면, 빙하 핵(ice core)과 호수 침전물, 나무 나이테, 산호 등 과거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약 700개의 시료(척도)를 통해 지난 2000년간의 기후변화를 분석한 결과, 지구 기온이 20세기 말처럼 전(全)지구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한 전례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노이콤 박사는 현재 전개되는 지구온난화 속도와 공간적 양상은 자연적 원인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동저자인 컬럼비아대학 네이선 스타이거 박사는 논문이 밝히고 있는 사실이 화석연료와 인류 활동이 지구 기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결정적 추가 증거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古)기후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기초 연구에 필요한 시료를 찾거나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북극이나 남극, 그린란드, 시베리아, 알래스카, 북유럽, 알프스, 히말라야 등에서 연구에 적합한 빙하 핵(ice core)이나 얼음쐐기(ice wedge)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간적·금전적·정신적·육체적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깊이 파내려 갈수록 수만 년, 수십만 년 전에 만들어진 얼음을 캐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빙하 핵과 얼음쐐기에는 과거의 공기가 얼음 속에 미세한 공기방울 형태로 포함돼 있기 때문에 얼음 생성 당시의 대기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등과 같은 온실기체의 대기 중 농도가 과거 특정 시기에 얼마였으며, 농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확인하고 추적하기 위해 (물질 간 오염과 간섭에 주의하면서) 10년·20년·30년... 등 연구 목적에 맞는 간격으로 측정해 가며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뽑아낸다.

측정에서 얻은 데이터들이 과거 특정 시기의 대기온도, 식생변화, 해류순환, 화산활동 등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비교해 보면서 과거 특정 시기의 온실기체와 기후변화간 상관관계에 대해 규명해 나간다.

결국 이와 같은 연구활동을 통해 도출된 정보와 해석이 과학적 검증과 동의를 거쳐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는 것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던 사실과 사태를 실재적인 것으로 확정해 가는데 매우 중요한 일부다.

한국의 온실기체 정밀 측정에 대해

대기의 화학적 구성과 화석연료 연소의 시계열 기록에 대한 과학적 측정이라는 측면에서 대기 중 온실기체 정밀 측정의 시작은 1958년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 박사에 의해 이뤄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에서부터였다.

이후 대기 중 온실기체 측정 방법·기술·기기 수준의 향상과 함께 동위원소 측정 방법의 개선과 기술 발전이 뒤따르면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온실기체와 기후변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온실기체 관측 네트워크와 체계가 확대·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경우, 대기 중 온실기체를 지역급으로 관측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안면도 △고산 △울릉도·독도 등의 기후변화감시소들이 운영되고 있다. 안면도는 1999년, 고산은 2013년에 세계기상기구(WMO) 정식 관측망으로 각각 등록됐다. 하지만 울릉도·독도는 일본의 반대로 아직 등록돼 있지 않다.

온실기체 측정 방식을 살펴보면, 기후변화감시소 시료채취 타워 상단에 설치된 흡입구(In-let)에서 흡입펌프를 이용해 공기시료를 냉동기형 제습장치로 보내 건조공기로 만든 후 온실가스 측정 장치로 농도를 측정하게 된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공동감쇠분광기'로, 아산화질소와 염화불화탄소류, 육불화황은 '가스 크로마토그래피'로 분석된다.

현재 감시소에는 온실기체 배출 원인을 평가하고 출처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동위원소 측정기술은 준비돼 있지 않다. (다만, 일부 대학 연구센터에서 몇몇 연구팀이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자체 활용하고 있는 동위원소 측정기술은 세계적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전지구(1984-2019년), 안면도(1999-2020), 고산(2012-2020), 울릉도(2014-2020), 독도(2014-2020)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 2019년 이산화탄소 연평균농도는 전지구 410.5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ppm) 대비 약 48% 증가. 안면도는 2020년 420.4ppm으로 1999년 371.2ppm 보다 49.2 ppm 증가./이미지=기상청 기후포털
전지구(1984-2019년), 안면도(1999-2020), 고산(2012-2020), 울릉도(2014-2020), 독도(2014-2020)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 2019년 이산화탄소 연평균농도는 전지구 410.5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ppm) 대비 약 48% 증가. 안면도는 2020년 420.4ppm으로 1999년 371.2ppm 보다 49.2 ppm 증가./이미지=기상청 기후포털

오늘날의 회의론자는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에 기인한 것들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몇 가지 부분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경우, 지구온난화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과학자그룹이 내놓고 있는 검증된 물리과학적 정보와 해석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반면, 기후변화의 영향·대응책과 관련해서는 정치적·경제적·지역적 차이와 역학 관계라는 관점에서 여전히 비판적이다.

그렇다면, 회의론자가 고수하는 비판적 주장의 본질 및 근거는 무엇일까?

[다음 편에 계속]

이우탁 경제산업부 부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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