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절기상 대서(大暑)인 지난 22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력사용이 올여름 최대치를 경신했다. 오후 6시 기준 90.0GW로 집계됐는데, 이는 올여름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시간대 전력 공급능력은 100GW를 기록했고, 전력 예비율은 11.1%를 나타냈다.

한여름 폭염이 쏟아지면 당장 걱정스러운 게 우리의 전력 공급이 충분한가이다. 가뜩이나 탈원전 정책 추진에 전력 생산량이 줄어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 걱정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11년에 발생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비 등을 이유로 정지돼 있던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키로 했다. 또 전국 공공기관에는 에어컨 ‘자제령’을 내리는 등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앞으로 폭염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산업생산 증가로 인해 전력수요가 확대될 경우 블랙아웃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와중에 전력난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가장 큰 이유는 현 정부 들어 추진된 '탈(脫)원전' 정책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데다 한국형 원전 해외수출도 차질을 빚고 있다. 심지어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를 고사(枯死) 직전으로 몰아넣고선 원전을 외교 전략으로 이용하는 건 현 정부가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전력당국은 예비력이 5.5GW 이상이면 정상 상태로 판단한다. 하지만 통상 발전기 고장이나 이상고온 등 돌발상황까지 대비하려면 예비력은 10GW, 예비율은 10%를 넘겨야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강한 폭염과 열대야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정부도 올여름 전력 예비율이 이달 넷째 주에 가장 낮아져 4.2∼8.8%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력수요가 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경우 전력 예비율이 4.2%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되면 2011년처럼 블랙아웃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시 늦더위로 최대 전력수요가 6만7280㎿까지 치솟으며 전력 예비율이 5%로 급락하자 정부는 전국적 블랙아웃 사태를 막기 위해 순환정전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전국 212만가구의 전기가 끊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다급해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기존 정책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예비 전력을 늘리기 위해 시운전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에 투입하고 영구 정지한 삼천포 화력 1·2호기, 보령 화력 1·2호기를 재가동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업들에도 탄소저감을 요구하는 정부가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현재 24기인 원전을 2050년까지 9기로 줄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을 29%에서 7%로 줄이고, 그 대신 현재 발전량의 4%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61%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산과 바다에 지금보다 몇 십 배에서 몇 백 배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원전 사고 등으로 인해 탈원전이 한때 세계를 유행처럼 휩쓸었으나 반전되고 있다. 당초 기대한 환경개선 효과보다는 전력난을 초래했고 4차산업으로 급증하는 전력을 원자력발전이 아니면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마저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고, 미국은 60년이나 된 원전의 수명을 20년이나 연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다르게 가고 있다. 이미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뿐 아니라 앞으로 2025년까지 원전 4기가 줄줄이 멈춰 설 예정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원전은 탄소중립 로드맵을 짜는 데 핵심이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에너지원별(kWh당)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석탄이 991g, 석유는 782g, 가스는 549g이다. 태양광은 57g, 원자력은 10g밖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경제성까지 고려한다면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원자력보다 좋은 에너지는 없어 보인다. 

원전이 다른 에너지보다 안전하다는 분석이 최근 나왔다. EU(유럽연합) 합동연구센터가 한국과 유럽 등에서 짓고 있는 3세대 원전을 100년 동안 가동해 1조㎾h를 생산할 경우 중대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0.000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사망 확률이 1만분의 8명이라는 얘기다.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때 태양광 0.03명, 육상 풍력 0.2명, 해상 풍력 1명보다 훨씬 낮다. 우리 정부는 이런 과학적 연구조차 믿지 않고 탈원전 페달만 밟는다.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에 원전 4기를 수출할 정도로 원전 기술 면에서 세계 정상을 달린다. 전 세계 430기의 원전 건설이 검토되는 상황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한국형 모델인 APR-1400은 미국 안전기준에도 유일하게 통과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탈원전론자들은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가 재앙 수준이기에 원전을 더 이상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원전 APR-1400은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가압경수로로 폭발 가능성이 낮다.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일본의 비등경수로와는 안전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는 수십 조원을 들여 한국형 원전을 선택한 것이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