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밀 가격, 7년만에 최고치 상승 …대두·팜유 등도 덩달아 오름세
라면업계, 원재료 부담 감수…서민 음식 특성 상 올리는 것도 눈치
SPC ·CJ푸드빌 올해 초 이미 1차례 가격 올려…이번엔 건너 뛴다
증권업계 “식품업계, 실적 지난해보다 저조할 듯 …원재료 인상분 반영”

라면 ·빵 가격 인상 CG. (사진=연합뉴스)
라면 ·빵 가격 인상 CG.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김주경 기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이어 이제는 식량대란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 이에   오뚜기·농심 등 라면업계를 비롯한 SPC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도 밀가루와 팜유 등 원재료값 부담이 가중돼 임계치에 달했음에도 가격을 쉽사리 올리기보다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곡물교역은 코로나19로 국가 간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사실상 발이 묶인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상기후까지 덮치면서 곡물 생산량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실제로 곡물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3일 미국소맥협회에 따르면 국제 밀 가격 기준치를 나타내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의 밀 선물가격은 3일 새벽(현지시간) 기준 부셸(BU·곡물량을 세는 단위) 당 7.4달러(8310원)를 기록했다. 2014년 12월 이후 7년 만에 역대 최고 가격이다.

미국소맥협회가 공개한 국제 밀 가격 기준치를 나타내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 내 밀 가격추이. (사진=미국소맥협회 홈페이지 캡처)
미국소맥협회가 공개한 국제 밀 가격 기준치를 나타내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 내 밀 가격추이. (사진=미국소맥협회 홈페이지 캡처)

밀 가격 급등을 초래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에서다.

남미지역 가뭄이 계속 이어지는 등 지난해 주요 곡물 생산지의 작황이 악화된 데다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대량구매, 미국 내 서리피해에다 올해 가뭄까지 겹친 영향이다.

최근 세계 경기 회복으로 화물 물동량이 증가하고, 코로나19에 따른 선적국 선박·선원 검역 강화 등으로 체선이 많아져 해운 시황이 폭등한 것도 주요인이다.

곡물가 상승세는 하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체 밀 사용량 대비 95%는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호주산 밀이 국내 밀 소비량의 45%로 비중이 가장 크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라면 수요가 급증했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농심의 라면 매출은 전년보다 16.3% 증가한 2조868억 원에 달했다. 이는 농심 전체 매출의 79.0%에 달하는 것으로, 라면 매출이 2조 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이외 팔도, 삼양식품의 라면 매출도 전년보다 각각 9.2%, 20.9% 늘었다. 사진은 이날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라면 수요가 급증했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농심의 라면 매출은 전년보다 16.3% 증가한 2조868억 원에 달했다. 이는 농심 전체 매출의 79.0%에 달하는 것으로, 라면 매출이 2조 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이외 팔도, 삼양식품의 라면 매출도 전년보다 각각 9.2%, 20.9% 늘었다. 사진은 이날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밀, 대두 등 원재료 인상에 따른 부담이 가장 큰 곳은 단연 라면업계다.

밀가루 오름세에 더해 라면의 또 다른 핵심재료 팜유와 소맥분 가격도 최근 1년 새 81.95%, 39.88% 폭등했다. 특히 팜유 가격은 10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라면업계는 가격 인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부담 없이 즐기는 서민음식 특성 상 자칫 가격을 올렸다가는 자칫 비난에 휩싸일까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 필요성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며 "다만 라면 가격에 소비자들이 민감하고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자진해서 먼저 가격을 인상하기에는 업계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뚜기는 지난 2월 라면 제품 별로 평균 인상률 9.5%를 검토했다가 빗발친 여론에 떠밀려 철회한 바 있다. 회사 핵심 제품 중 하나인 진라면 (5개입 묶음)기준 가격 2750원에서 3000원으로 9%가량 올린 것이다.

오뚜기는 2008년 가격 인상에 나선 이후 13년 넘게 현재 가격기조를 계속 이어가는 모습이다.

가격 경쟁력에 기반한 판매량이 꾸준한 증가한 것이 원재료 상승 부담을 버텨낸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라면제품은 합리적인 가격에 고객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보니 가격 경쟁력은 고객들이 제품을 선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며 “밀가루나 팜유 등 라면 재료의 근간이 되는 원재료값이 동반 상승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요인이지만, 다른 제품가격은 올려도 라면만큼은 가격을 쉽게 올리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이 확고하다”고 설명했다.

농심도 당분간 가격인상 계획은 없지만 밀가루 가격 추이를 좀 더 지켜본 다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3월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 농심 본사 사옥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라면값 인상 방침과 관련 “아직까지는 결정된 것이 없고 당분간 현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 내부적으로는 원재료 가격을 포함해 국제유가가 한꺼번에 오르면서 압박이 큰 관계로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부 의견도 나온다”면서 “라면값 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별도 공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밀가루 가격 인상 CG. (사진=연합뉴스)
밀가루 가격 인상 CG. (사진=연합뉴스)

제빵업체들도 밀가루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다만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와 뚜레쥬르를 보유한 CJ푸드빌 등 주요 베이커리 기업은 올해 초 한차례 가격을 올린 관계로 가격 인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파리바게뜨는 올 2월 중순 총 660개 품목 가운데 95개 제품의 가격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품목 대비 약 14.4% 규모이며, 평균 인상폭은 5.6%다.

고객들이 자주 사먹는 소보루빵은 1100원에서 1200원(9.1%), 땅콩크림빵은 1200원에서 1300원(8.3%), 치킨클럽 3단 샌드위치는 4100원에서 4200원(2.4%)으로 올렸다.

뚜레쥬르도 빵 90여종 가격을 100원씩, 평균 9% 인상했다. 단팥빵·소보로빵은 1200원, 크루아상은 1800원에 판매하고 있다.

SPC관계자는 “당시에는 버터, 치즈를 포함해 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맹점주의 요구에 따라 인상할 수 밖에 없었다”며 “지금도 부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코로나로 고객들의 주머니 부담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가격인상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종합식품업계 1위인 CJ제일제당도 밀가루 가격 상승으로 일부 제품 가격인상 카드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고객들과 접점이 많은 B2C(기업과 고객 간 거래) 제품은 가격인상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반면 사업거래 비중이 큰 B2B(기업 간 거래)에 대해서는 가격 인상 여지를 열어놓은 것.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밀, 대두 등 국제곡물 가격이 연일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압박이 거센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내부에서 감내하고 있다”면서 “원자재값이 오른다고 해서 제품 가격으로 바로 인상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바로 가격을 인상할 수는 없지만 한계가 있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가격 인상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는 주요 식품기업들의 올 1분기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주춤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사재기 등 반짝 특수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수혜를 입은 데다 작년 실적에 대한 기저효과가 반영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게다가 들여오는 원재료 가격이 갈수록 비싸지는 상황에서 일부 원료는 매출에서 충당해야 하는 관계로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식품업계와 증권업계 중론이다.

이경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종합식품기업들은 B2B 중심 제품의 소비확대에도 불구, 전년 동기 주요 제품 개발 확대 영향에 더해 원가 상승 이슈 등에 따라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영업 실적이 예상된다”면서 “원가 측면에서 유지류 등 원재료 상승분은 단기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일부 제품에 대한 가격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지만, 인상분이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마이너스 성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주경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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