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로 대규모 투자 ·M&A 합병 등 ‘뉴삼성 동력’ 약화 불가피
총수로서 ‘대통령 요구·횡령액 반환’ 등 거절 어려움 감안 ‘형량’ 감경
준법감시 ‘위법 예방행위’ 양형사유 인정 어려워‥유형화작업 미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뇌물공여와 횡령혐의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이 탄원서를 제출해 선처를 구했지만 법원은 경제계의 호소를 끝내 외면한 것이다.

지난 2019년 8월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의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낸 지 508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 전에 구속된 353일을 형기에 포함하면 2022년 7월29일에 만기 출소하게 된다. 1년 6개월이나 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계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삼성의 경영 차질과 국가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지난 18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이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즉시 발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정 구속됨에 따라 삼성은 비상경영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정 구속됨에 따라 삼성은 비상경영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요인은 △최서원에 공여하고자 회사 공금을 횡령한 점 △횡령액수 50억 이상으로 높다는 점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점이다.

앞서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위법 행위 예방에 실효성이 있을 경우 감형 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결과론적으로 판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종합해보면 이번 파기환송심은 뇌물공여, 횡령, 범죄수익은닉, 위증 등 주요 혐의와 관련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 대부분 그대로 인정된 셈이다.

우선 이 부회장 횡령액이 50억이 넘는다는 점이 구속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뇌물을 적극적으로 제공한 점 들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해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그의 측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총 86억원의 뇌물을 공여해 유죄가 성립된다는 점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법에 따르면 피고인을 둘러싼 여러 혐의 중 최대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인 범죄일 경우 해당 범죄를 기준으로 양형기준이 결정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횡령죄를 기준으로 처벌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원 이상 횡령 시 법정형은 최대 무기징역 또는 최소 징역5년을 받게 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재계 총수가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을 참작해 ‘작량감경’(정상 참작의 사유가 있으면 판사 재량으로 형기를 단축시켜주는 조항)을 적용해 가장 낮은 법정형(징역 5년)의 절반을 선고한 것.

재판부 입장에서는 실형을 선고하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형량을 적용한 것이다.

준법감시위 활동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양형기준에 반영됐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기업 총수 관련 범죄를 예방할 만큼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가 위법 행위를 실효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향후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을 유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 삼성 준법감시위에는 이러한 법적 위험 유형화 작업이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상 오너와 관련 범죄의 경우 허위 용역 계약을 맺는 등의 방식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뇌물 공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준법감시위의 대외후원금 지출 심사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과 범죄의 상당수가 경영전략실, 구조조정본부 같은 그룹 컨트롤타워 조직을 통해 뇌물이 제공됐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없다는 점이 한계라고 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준법감시위 유형화작업이 좀더 체계적이었다면 감경사유로 인정돼 형량은 2년6개월보다 훨씬 낮아졌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울러 국회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최씨 모녀가 누구인지 모르는 데다 승마 관련 지원한 사실도 모른다’는 취지로 거짓 증언한 최씨 측에게 준 말 세 필 구입대금 등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회사 사옥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회사 사옥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계는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자 실망과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삼성의 경영 차질과 국가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이날 법원의 판결은 국가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며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 삼성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텐데 총수의 부재로 경영과 투자 결정이 위축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입장문을 배포해 “이재용 부회장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진두지휘하며 한국경제를 지탱하는데 일조해 왔는데 안타깝다”며 “이번 판결로 인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총도 입장문을 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의 경영 공백으로 중대한 사업 결정과 투자가 지연됨에 따라 경제·산업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 차질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행정적 배려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도 "한국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한 데,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신산업을 유치하는 활동 등 그가 직접 나서야 하는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 과감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이하 암참) 회장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과 관련 ‘한국만의 독특한 사례’라고 평가하며, 유감을 표했다.

김 회장은 19일 온라인으로 열린 암참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얼마나 과도하게 기업인에 법적인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물론 법치주의가 중요하지만 이같은 사례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의 경쟁리더십을 펼치고 있는 삼성이 이런 유감스러운 사건에서도 리더십을 유지하고 기업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주경 기자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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