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송(宋) 나라에 원숭이를 좋아하여 키우는 저공(狙公)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원숭이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원숭이 먹이인 도토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에 저공은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짐짓 저공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라고 하였다. 이에 원숭이들은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다 아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유래를 새삼스레 꺼낸 것은 시계 2015년에도 어김없이 얄팍한 잔꾀로 국민을 농락하는 처사가 재현되고 있는 까닭이다.

여야와 정부, 공무원단체가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을 내놨다. 보험료(기여율)를 5년에 걸쳐 월 소득의 7%에서 9%로 28.6% 올리고, 연금 지급률은 20년간 1.9%에서 1.7%로 10.5% 낮추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7개월을 끌고왔던 합의가 고작 공무원단체를 설득해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점 외에 평가할 가치가 없다. 쌍방 합의도출이 의미가 있으려면 내용이 목표에 부합해야 하건만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2009년처럼 ‘약간 더 내고 약간 덜 받는’ 식의 숫자 조정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졸속에 그쳤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우선 목표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통합을 통한 형평성 제고인데, 이번 합의안에 언급조차 없었다. ‘우등 공무원연금-열등 국민연금’ 구조의 존치로 형편이 훨씬 나은 공무원 노후를, 살림살이 거덜난 국민이 책임지는 개떡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질 판이다.

이 뿐인가. 그나마 재정 절감이라도 제대로 추스려야 하는데 이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재정 절감 효과를 내려면 ‘보험료 10% - 지급률 1.65%’의 수지균형이 맞춰져야 했는데 이 근처에도 못 갔다. 이 때문에 당초 개혁안보다 70년 동안 최소한 108조원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

그동안 뒷다리를 잡고 늘어지던 야당도 문제지만 졸속 합의한 새누리당의 책임이 더 크다. 엊그제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했다고 의기양양해 국민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당초 논의에서 대폭 후퇴한 안이 검토되자 “반쪽 개혁, 누더기가 돼 국민 공분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게 새누리당 대표가 아니던가.

그래놓고 그나마 반쪽도 못 되는 맹탕 개혁으로 잔꾀를 부리니, 향후 연금특위-법사위-본회의 과정에서 어떻게 처결할 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야당은 더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번 안으로 절감하는 돈으로 국민연금 지급률 인상이나 저소득층 사각지대 해소에 쓰자는 공무원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어떻든 정부 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들고나온 이후 숱한 파란곡절을 겪은 데서도 알 수 있듯 연금 개혁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이번에 맹탕졸속에 누더기 개혁을 하고 나면 다음에 손대기가 더 힘들어진다. 20년 뒤나 30년 후라도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시한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개혁을 하려거든 국민 동의부터 얻고 제대로 하라고 권고한다. 더이상 조삼모사 졸속안으로 국민을 농락하다간 범국민적 저항과 처절한 선거심판이 기다릴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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