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감사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가 잘못됐다고 결론 낸 데 대해 원전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탈(脫)원전이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 수단을 무리하게 동원한 게 결국 탈이 났다는 이야기다. 

월성1호기는 원래 2012년 11월 30년 설계수명을 종료했다. 하지만 한수원에서 5925억원을 투입, 설비를 보강해 수명을 2022년 11월까지 연장했다. 이 재가동 과정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까지 받았다. 수명연장 과정만 본다면 조기 폐쇄할 이유가 없다.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원전의 경제성을 낮게 평가하도록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 이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전국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대자보를 기획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을 ‘현 정부의 월성 원전 기획 살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기술은 핵폭탄 제조 기술과 비교할 수 없다. 원전은 적어도 200만개의 부품이 얽히고설킨 하이테크 기술의 집합체다. 독자적으로 원전을 만들고 수출도 하는 나라는 극소수다.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프랑스, 중국 정도다. 여기에 핵보유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더해진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사용한 APR1400 원자로형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과 유럽 사업자 요건을 모두 얻었다. 이는 자기들 땅에 원전을 지어도 좋다는 인증이다.

세계는 원자력을 필요로 한다.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원자력은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은퇴 후 에너지 전도사로 변신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운 가장 큰 목표는 ‘인류를 위한 안전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 핵심에 원자력이 있다. 

탈(脫)원전 정책 속에 원전산업은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 국내 원전 관련 기업은 총 1988개다. 국내에 원전을 건설하지 않으면 국내 중소 부품업체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원자력 관련 공기업과 민간기업에서 퇴직하는 직원이 잇따른다. 상당수 전문인력은 ‘미래’를 위해 해외로 떠나고 있다.

두산그룹이 탈원전·탈석탄 정책의 직격탄을 맞고 친환경 에너지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지만 그걸 유도한 장본인은 석탄·원전 세일즈를 계속하는 아이러니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과학계는 원전인력 해외 유출, 부품사 도미노 파산으로 60년간 어렵사리 쌓아온 세계 최고 원전 기술과 생태계가 붕괴돼 당장 5년 내 기존 원전 운영마저 어려워질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탈원전론자들은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가 재앙 수준이기에 원전을 더 이상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원전 APR1400은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가압경수로로 폭발 가능성이 낮다.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일본의 비등경수로와는 안전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UAE는 수십 조원을 들여 한국형 원전을 선택한 것이다. 

정부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 과정에서 원래 명분이었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대지 못했다. 대신 편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경제성을 잣대로 조기폐쇄를 밀어붙였다. 정부 스스로가 탈원전 명분을 찾지 못하고 대통령 공약 이행에만 집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말 신고리 5·6호기 납품을 끝으로 원전 부품사들의 일감이 끊긴다. 2016년 두산중공업에 납품하던 325개 부품사가 지난해 219개로 쪼그라들었고, 신규 계약 건수는 2016년 2836건에 비해 60% 이상 급감했다. 

신한울 3·4호기는 공정률 30%에서 중단됐다. 신한울 3·4호기만 살려도 정부가 2030년까지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전국 태양광보다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축구장 220개 면적의 국내 최대 태양광단지를 300개 세워야 만들 수 있는 전기를 단 2기의 원전만으로 생산 가능하다.

중국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중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고 원인에 대한 정밀 분석이 나오자 1년 만인 2012년 원전 건설을 재개했다. 안전장치를 대거 보완한 3세대 원전 건설을 본격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원전 없이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친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이 없다고 본 것이다.

김웅식 경제산업부 부국장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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