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 동덕여대 교수

[뉴스워치=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영국의 인류학자 E. B. 타일러는 그의 저서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를 통해, 문화를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로 규정지었다. 문화는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위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인본주의적이다.

국민을 기반으로 한 근대국가에서 국민은 정치적으로 절대적 주권을 지닌 존재로 공통의 언어, 종교, 국가적 상징물에 대한 일체감과 동질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전제된다. 단일 국민이 단일 국가에 연계될 경우 이를 국민국가라 하며 동일한 역사, 혈통을 지닌 개인들은 스스로를 동일민족으로 인식하고 이 동일민족에 의해 형성된 국가가 민족국가이다. 민족국가란 혈연적 근친의식에 바탕을 두고 집단을 구성하여 공동사회·경제생활을 영위하며, 동일한 언어와 문화전통의 심리를 바탕으로 한 인간 공동체이다.

그러나 이 민족국가라는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노동력을 팔기위해, 이념과 가치를 위해, 사람들은 국경을 넘고 있으며 이에 21세는 ‘이주의 시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초기의 이민자들은 일시적 노동력의 결핍을 보충하려 다른 나라로 건너갔고, 대부분은 일시적인 체류였으나 자녀들의 성장과 더불어 그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게 되자, 주류문화에는 편입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 적지 않은 규모의 다양한 문화적 관습을 지닌 인종집단의 정주로 이러한 국가들은 더 이상 단일국가 정체성을 고집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유입된 문화가 기존 문화가 갖고 있는 정체성과 연관을 맺을 때 문화에 대한 선택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게 된다. 정체성의 동질성에 기반하고 있는 국민국가 다인종적 상황과 모순에 빠지게 되자 다인종적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책모델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혹은 이주민을 차별하고 배제하거나 혹은 이주민을 주류집단에 동화시키거나 혹은 이주민의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해주려는 태도가 그 것이다.

이것이 차별모델(Differentialist model), 동화주의 모델(Assimilationist model),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델은 이를 채택한 국가들에 의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특히 차별모형과 동화모형을 비판하면서 대두된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도 사회적 갈등 해결 능력이 약하고 구성원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심화된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다른 문화적 정체성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차별모델이니 동화주의 모델이니 다문화주의니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어떻게 제도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제도는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만들었지만 인간이 사라지고 제도만 남게 된다면 그 제도는 인간을 억압하는 역으로 기제가 되기도 한다.

취업이나 국적의 취득 등에서 이주민을 차별하고 배제하거나 이주민을 주류집단의 문화와 언어 등에 동화시킴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억압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주민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인간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다. 이미 여러 다문화 된 국가들의 예에서 보듯이 다문화 제도는 여러 부작용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새로운 사회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문화가 인본주의적이었듯이 다문화도 인본주의적인 것이다. 제도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 모두의 행복을 위한 다문화의 정책 모델을 설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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