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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속의 다문화박성호 / 동덕여대 교수
▲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역사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자 한다. 우리 역사 속에도 적지 않은 이주민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은 천계부족으로 당시로서는 이주민이었으며 토착세력인 웅녀와 혼인하여 서로 다른 문화를 조화롭게 발전시키고 이로써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필자는 단군을 다문화의 시조로 불러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기록들에 따르면 대륙에서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북방 유목 민족인 거란족이나 여진족, 몽골족이 정치적 혼란기마다 대거 한반도로 유입돼 정착해왔다. 왜인도 이미 1~2세기경 삼한시대부터 한반도의 남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일본인 귀화자 이야기가 나온다. 지정학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따르면 금관가야 시조인 김수로의 비인 허황옥(許黃玉)은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이다. 허황옥은 먼 항해를 거쳐 김해 남쪽 해안에 도착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모가 됐으며 한반도에 차(茶) 문화와 불교문화를 들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한반도와 아랍 간의 교류는 신라 때부터 존재해왔는데, 이들이 한반도에 정착해 살았던 흔적들 중 대표적인 것이 경주 괘릉의 무인석(武人石)이다. 오똑하고 큰 코와 곱슬머리, 터번을 쓴 모습 등은 신라인과 전혀 다른 생김새를 지닌 사람들이 경주에 정착해 살았음을 말해준다.

삼국유사의 처용은 880년경 헌강왕 때 동해 바닷가 개운포에 홀연히 나타났다고 말하여지는데 이 처용을 아랍인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당시엔 ‘개운포’였던 울산은 경주의 위성 도시이자 최대 무역항으로 신라의 국제 교역로 역할을 했다. 지금의 시리아에 있었던 우마이야 왕조(661∼750) 시대 박해를 피해 달아난 알라위족이 한반도에 망명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엔 몽골을 매개로 이슬람인과의 교류가 빈번했다고 한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이들은 고려 개성에 예궁(禮宮)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데, 예궁은 지금의 모스크이다. 이슬람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조가 아뢰길 회회(回回)의 무리가 의관이 달라 이질감을 느끼는바 이미 우리 백성이 되었으니 마땅히 우리 의관을 따라 차이를 없애야만 자연스럽게 혼인하게 될 것이다’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조선 초 역법 ‘칠정산내외편’ 중 외편이 이슬람력 원리를 도입해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다.

고려건국 후 12세기 초까지 한인과 여진, 거란, 발해계 등  17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고려로 귀화하였고 이는 당시 인구의 8.5%에 달했다는 연구도 있다.

오늘날 화산 이씨의 조상으로 알려진 이용상(李龍祥)은 베트남의 왕자였다. 왕위 계승을 위한 권력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안남국(베트남)을 탈출한 그는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 화산 지방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몽골군을 격파해 항복을 받아냈고, 이런 공을 인정받아 화산군(花山君)의 작위에 봉해졌다.

하멜표류기로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알린 네덜란드 선원 하멜은 1653년(효종 4년) 일행과 함께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제주도에 표류하여 조선에 억류돼 훈련도감에 편입되었는데 그가 통역자로 만난 사람이 그보다 앞서 조선 땅에 들어와 귀화한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이다.

이러한 이주민들은 그 처지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동반자와 기술, 문화를 가지고 이 땅에 들어왔을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외국인의 숫자는 생각이외로 많은 듯싶다.

한국은 2015년 3월말 기준으로 국내 체류외국인의 규모가 180만 명을 넘어서고 외국인 비율은 전 인구의 3.5%를 차지하였다. 서울시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와 경기도 안산시 등은 외국인 비율이 10%를 넘어서고 있으며, 법무부는 현재와 같은 증가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에 외국인 수는 320만 명으로, 총 인구의 6.1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잇따른 다문화정책의 실패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주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우리가 단일민족임을 내세우며 퍼지고 있는 반다문화주의이다. 적극적인 이민자 포용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유발 효과는 9조 9160억원, 국내총생산(GDP) 기여 금액은 3조 1463억 원에 달할 정도로 외국인 근로자의 국내 경제 기여도는 크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개방의 물결을 타고 세계는 글로벌화 되고 있으며 국가 간 사람의 이동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지구촌시대에 단일민족의 가치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문제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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