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사설]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22)가 지난달 26일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도 보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사회적인 파장은 감독과 팀 닥터, 선배들의 폭언과 폭행이 드러나면서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최 선수가 이같은 사실을 올 2월부터 경찰, 경주시청, 경주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에 지속적으로 알렸는데도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점에서 국민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

우선 피해자의 동료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폐쇄적인 팀 운영 속에서 가해진 상습적인 폭력과 가혹행위를 폭로하면서 실상이 밝혀졌다. 체벌로 20만원 어치의 빵을 밤새 토하도록 먹거나,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가해진 폭행 등 한 달에 열흘 가량은 맞았다고 진술했다.

팀 닥터로 행세한 안주현씨의 치료를 빙자한 성추행 등등 모두 나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사정이 이러한데도 관련 기관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비난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치료비 명목으로 거둔 심리치료 비용에서부터 해외 전지훈련 당시 폭행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 등등 증거가 충분함에도 최 선수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미 쇼트트렉 심석희 선수에 대한 코치의 폭력사건 후 재발 방지를 약속한 대한체육회 등 관계 당국에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폭력, 성추행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 보호 조치는 물론 가해자 징계 등 재발 방지에 뒷북만 쳤던 것을 상기하면 피해 선수들은 도대체 어딜가서 호소를 해야 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물론 현재 만연한 체육계의 폭언, 폭력과 성추행 등 부조리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한체육회나 문화체육관광부 등 중앙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운동선수의 인권보호를 위한 자구책이 있다. 체육계 전반에 걸쳐 곪아있는 성폭력과 폭력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코치와 선수로 상징하는 강압적인 조직문화와 지자체마다 촉발되는 성적 지상주의가 각종 부조리를 양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선수들의 인권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폭력예방교육은 물론 전수조사, 인권보장을 위한 전문적인 지원책이 있음에도 불미스런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선 체육계의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단체가 나서 선수 관리.보호 대책을 마련해 부산을 떨어도 만연한 체육계의 부조리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최 선수의 비극 뒤에는 체육회와 공무원, 감독이 결탁된 그들만의 검은 공생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성적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에 폭력과 성추행 등 문제제기에도 이들 3자가 묵인 또는 은폐해 온 것이 사태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번 최 선수의 사태에 앞서 나온 자료 역시 이를 잘 뒷받침한다. 경기도 스포츠선수 100명 가운데 6명꼴로 성폭력(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다.

지난해 9월 실시한 조사에서 선수들은 불쾌감을 주는 성적 농담, 신체 부위.성적 비유 평가에서 술 따르기 강요, 성적 관련 소문, 특정 신체부위 더듬음 등의 순으로 답했다.

가해자는 지도자(38.3%), 선배(28.4%)로 나타났지만 대처 방식은 60% 이상이 그냥 넘긴다고 답해 추후 조치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 지도자(선수) 자격 취소, 영구 제명 처분 등 제도개선에도 폭력과 성추행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살펴 보아야 할 과제다.

최 선수의 사태는 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경주시청 김 모 선수가 납골당을 찾아 사죄하면서 감독과 주장 선수의 폭행 사실을 폭로해 새로운 국면에 들어 갔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가해혐의자인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과 선배 장 모 선수에게는 영구 제명, 선배 김 모 선수에게는 10년 자격정지 중징계를 내렸다.

최 선수의 부모까지 나서 피해 호소를 백방으로 알린 사실에 비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시의적절한 조치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폭력 등 체육계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번 만은 체육계 폭력 근절을 바라는 목소리를 귀담아 새겨 범죄행위에 엄중 처벌과 함께 재발 방지에 진력하길 바란다.

때마침 박양우 장관도 “이번이 체육 분야 악습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밝혔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경종을 울리고 폭력과 확대 재생산의 구조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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