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김도형 기자] 김종인 위원장(80)은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로서 지난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전문 위원을 지냈으며,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비례대표)으로 정계 입문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장관 및 경제수석을 지내면서 대권을 꿈꾸어 온 사람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직후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사면·복권되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전국구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 및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및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2016년 제20대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돼 총선 정국을 이끌어 승리하는 데 일조고 지난 총선에선 막판에 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지휘했으나 참패했다.

그러나 지난 1일 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김 위원장은 ‘당내에는 차기 대권주자가 없다’며 ‘40대 기수론’을 들어 ‘제 2의 마크롱 찾기’에 나섰다. 경제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지도자로 프랑스의 마크롱(만 39세에 대통령 당선)처럼 차기 대권주자가 출현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통합당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 위원장(80)은 이달 1일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제를 비롯해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는 등 취임 한 달을 앞두고 논쟁적 담론을 제기하며 당 체질 개선에 나섰다.

[‘백종원 띄웠더니...’ 셀프 대망론 나오는 까닭]

하지만 판을 흔들었을 뿐 정책 실행력을 담보하지 못했고 당 지지세가 취약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백종원 띄우기’ 논란이 ‘김종인 대망론’으로 해석되면서 당보다 김 위원장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11월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보수 후보 출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 위원장은 등장부터 당내에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5월27일 총선 낙선자와 원외 당협위원장들 앞에서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보수’ 이미지가 ‘꼰대’ 이미지와 등치되는 현실을 넘기 위한 발언이었다.

비대위 회의 첫날엔 “진취”라는 단어를 꺼냈다. 진보보다 앞서나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진보진영의 독점적 의제였던 기본소득 문제도 이슈화했다. 구체적으로 “빵 먹을 자유”를 거론했고 이후 “검토 작업을 해 나가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선 ‘전일제 보육제’ 아이디어를 냈고, 대학 학제 개편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비대위 산하에 저출생·경제혁신 특별위원회 등을 만들어 정책 경쟁을 선언했다.

김 위원장의 문제 제기는 대여 투쟁 일변도의 야당을 정책 중심으로 개편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됐다.

최근 김 위원장은 초선 의원들과 오찬 자리에서 “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누구를 생각하느냐”는 당 소속 의원들 질문에 뜬금없이 “백종원씨 같은 분은 어떠냐. 이렇게 모두가 좋아하는 대중 친화적인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답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꿈도 꿔 본적이 없다’는 백 대표를 띄워 정치적으로 무슨 이득을 볼려고 한 것일까.

세간의 의혹처럼 혹시 본인이 직접 대권에 나서기 위해 만만한 백 대표를 띄운 것인 아닌지 의심을 사는 발언이 됐다. 이후 김종인 대망론은 잠재적 경쟁자로부터 나왔다.

[오세훈, “연령이 중요하냐...” 金 대망론  부추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대권주자로 직접 나설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게 정치”라며 “연령이 그렇게 중요하겠나.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이슈 메이킹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계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소리는 하지말라”라며 “나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다”고 대선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나이가 60만 됐어도...”라며 아쉬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여의도에서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 위원장은 과거 행적을 보면 ‘킹’보다는 '킹메이커' 역할에 충실해왔다. 지난달에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무현과의 인연'도 털어놨다.

2001년 당시 노 해수부장관이 두차례 찾아와 대선 출마를 도와달라고 간청했다는 것.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하더라”고 회상했다. "이런 사람(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노무현정권 시절 김 위원장은 민주당 비례대표를 지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자신의 ‘경제민주화 상징성’을 앞세워 박 후보의 약점으로 꼽히던 중도층 표심을 끌어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이후 김 위원장의 역할은 없었다. 경제민주화는 뒷전으로 밀렸다. 김 위원장도 강한 실망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민주당으로 돌아가 문재인 대표를 도왔다.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를 이끌었지만 정작 대선이 열린 이듬해 탈당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야인으로 지내왔다.

당시 의원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 개헌을 통해 김 대표도 실권자로 등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 대표는 2016년 3월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30년 동안 대통령 직선제를 해왔는데, 실질적인 문제를 대통령들이 하나도 해결 못 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각제가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구나 그는 “더는 킹메이커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사실상 정계복귀를 하면 ‘킹’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2017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일주일 만에 취소한 바 있다. 그는 당시에도 출마 선언 직전까지 “욕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며 출마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후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는 내각 구성권을 약속받고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보수 인물 부재론’이 부른 김종인 대망론 실현은...]

김 위원장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통합당으로 복귀해 ‘킹’과 ‘킹메이커’사이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김 위원장 본인은 “자리를 바라고 도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백의종군 정치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경제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크고, 경제석학들 사이 두터운 인맥을 갖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정치적 측면에서 기반이 튼튼하지 않고 나이도 고령으로 다음 대선 때에는 여든 둘이다.

시대가 그를 원하지 않는 이상 대통령감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에 혜성처럼 새로운 인물이 부각되지 않는 한 그를 두고 ‘킹이냐 킹메이커냐’라는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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