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도급 불법 판결 급증해 기업부담 가중 우려

MES 관련 2개 판결 적법, 불법 엇갈려 사업장 혼란 가중
“제조업 파견 허용해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해야”
"獨, 美, 英 등 주요국처럼 제조업 파견 허용 필요"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현성식 기자] 국내 기업들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소송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 사례가 급증하면서 인력 운용 부담이 한층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사내하도급 불법판결 사례가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기업들의 법무 리스크가 증가하는 등 인력운용에 상당한 부담이 초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사내하도급 소송의 판단기준이 되는 국내 파견법은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기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위주로 인정돼 온 불법파견 판결이 생산공정과 연관성이 낮은 물류‧운송 등 간접공정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확대됐다.

제조업 A사의 경우 법원은 하청 근로자들의 업무가 제조와 관련된 직접공정이 아닌 제조물을 운송하는 간접공정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원청이 하청업체 소속 관리자를 통해 지휘‧명령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인정범위 확대의 또 다른 문제는 과거 근로자 파견여부 판단에서 원‧하청 근로자의 혼재 근무, 즉 같은 공간에서의 근무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사외 하청 근로자에게까지 불법파견 판결이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조업 B사의 경우 제품 포장을 담당한 하청 근로자들이 하청업체 소속 제3의 공장에서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 관련 지시를 주고받은 것에 대해 지휘‧명령 행사의 근거로 보는 등 근로자 파견관계를 인정했다. 이는 사외 하청 근로자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문제시 되던 근로자 파견이 비제조업 분야로 확대되고 계열사 간 이동도 불법파견으로 인정됐다.

서비스업 C사는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해 전문성을 보유한 계열사의 직원을 본사로 전출시켜 본사 직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추진했다. 법원은 본사가 계열사 직원들에게 지휘‧명령․인사관리를 한 점, 계열사에서 장기간 대규모 인원을 지속‧반복적으로 전출시킨 점에 근거해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다.

이는 계열사가 직원 전출을 통해 수수료 등 이익을 취하지 않아 근로자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1심의 판결을 뒤집어 계열사 간 전출에도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향후 계열사간 이동에도 상당 부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급 거래는 원청업체가 외부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물품 등을 납품받는 거래며 사내하도급은 도급 거래가 원청의 사업장 내에서 이뤄지는 형태다. 도급거래에서는 하도급근로자에 대해 직접적인 지휘, 명령이 불가능하다. 파견근로의 경우 파견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근무하도록 하는 형태다.

파견법상 한국은 32개 업무에 한해 2년이내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기간을 초과하거나 제조업 등 파견제한 업종에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기업의 사내하도급 판결을 조사한 결과 전체 사내하도급 관련 판결 13건 중 10건(76.9%)이 불법파견으로 판결이 났다.

한경연은 이중 불법파견 인정범위 확대 등 주요 5건(4건 불법, 1건 적법)의 판결을 분석한 결과 과거에는 주로 제조업 분야에 국한해 원청의 공장 내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해 온 것과는 달리 간접공정, 사외하청, 비제조업 등에도 불법판결이 내려졌고 MES(생산공정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전산시스템)와 같은 전산시스템을 활용한 사례에 대해서도 불법과 적법판결이 엇갈리게 내려졌다.

지난해 사내하도급 소송 판결이 난 D사와 E사는 MES 전산시스템을 동일하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이 엇갈렸다.

D사의 경우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원청이 작업해야 될 내용을 MES를 통해 전달해 사실상의 지휘‧명령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MES를 통한 작업내용 전달에 대해 업무지시에 구속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E사는 원‧하청 근로자들의 업무가 장소‧시간‧기능적으로 명확히 구별되고 있고 구체적 지휘‧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MES를 통해 공유된 작업방식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고 실시간 지시를 보낸 점 등을 근거로 업무지시, 관리 했다고 판단했다.

한경연은 “MES는 생산효율 극대화를 위해 세계적으로 많은 제조업체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인데 이를 활용한 것을 지휘‧명령의 행사로 인정하는 것은 제조업 전반의 경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MES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상황 또한 산업현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연은 이어 “국내 파견법은 전문지식, 기술,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해 32개 업무로 한정돼 있고 파견기간도 최대 2년으로 한정돼 있어 도입취지와는 달리 고용 경직성을 오히려 높이고 있다”며 “한국도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처럼 사실상 모든 업무에 파견 근로를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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