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업경험·과감한 입찰가 베팅이 승부 갈랐다
현대백화점 면세점 ‘인천공항 인수’ 승자의 저주 우려

지난해 마지막 날인 3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면세점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김주경 기자]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면세점 입찰을 둘러싼 옥석이 가려졌다.

지난 9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제4기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DF3·DF4(주류·담배), DF7(패션·피혁) 구역 우선협상대상자로 호텔신라·호텔롯데·현대백화점면세점이 선정됐다.

이번 면세점 입찰경쟁은 롯데·신라가 사업권을 1구역씩 고르게 나눠 가졌으며,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예상을 뒤집고 인천공항 입성에 성공했다. 반면 면세점 3강 체제를 형성했던 신세계는 이번 입찰에서 사업권 확보에 실패하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앞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월 17일~2월 26일까지 5곳 대기업과 3곳 중소·중견기업 등 총 8개 사업권에 대한 4기 입찰공고를 게시했다.

입찰대상은 신라면세점이 거느리는 DF2(향수·화장품)·DF4(주류·담배)·DF6(패션·잡화)구역, 롯데면세점이 운영하는 DF3구역(주류·담배), 신세계면세점의 DF7구역(패션·피혁) 등 대기업 5곳, SM면세점·시티플러스·엔타스가 입점한 DF8·DF9·DF10구역 등 중소기업 3곳으로 총 8곳이다.

통상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평가는 대기업 기준 사업능력 60%·입찰가 40% 비율로 점수를 합산해 고득점순으로 단수 선발하는 방식이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업체들은 이후 관세청의 심사를 거쳐 최종 사업권을 획득하게 된다.

현대백화점 免, 예상뒤엎고 DF7 확보…입찰가 높게 써내 승기 잡아 

업계에 따르면 이번 면세점 입찰대전은 입찰 기업이 제출한 제안서에 담긴 사업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베팅한 입찰금액이 승부의 향배를 갈랐다.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이 확보한 사업권은 각각 DF3·DF4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DF7(패션·기타) 사업권 선점에 성공했다.

중소기업 사업권은 그랜드관광호텔이 DF8(전 품목), 시티플러스 DF9(전 품목), 엔타스듀티프리가 DF10(주류·담배)을 운영하게 됐다.

이번 대전에서 관심이 쏠린 곳은 신세계디에프·현대백화점면세점이 베팅한 DF7구역이다.

특히 이곳은 패션·기타 해외 명품브랜드가 대부분인 관계로 사업 경험보다는 입찰금액 베팅이 결정타였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 중론이다.

실제로 인천공항 공고에도 DF7구역은 국내 주요 면세점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 30위권 내 브랜드에 대한 입점제안을 권장하는 한편, 입찰에 참여할 경우 브랜드 입점 확약서를 함께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13일 관세청에 따르면 현대백화점면세점은 DF7 구역 입찰 당시 579억원을 제시했으나 신세계디에프는 20억원 적은 559억원을 써냈다.

반면 사업능력 평가에서는 신세계디에프가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해당 구역에 대한 매장 운영 경험이 있는 데다 면세점 경영에서 연속 흑자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구역은 패션·기타 해외 명품브랜드가 많아 관심도가 높은 만큼 인천공항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입찰가를 높게 제시했던 현대백화점면세점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입찰경쟁은 유의미하다. 시장 판도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여서다.

실제 시장점유율도 바뀌는 추세다. 2017년 면세점시장 점유율(매출액 기준)은 롯데면세점 41.9%·신라면세점 23.9%·신세계면세점 12.7%에서 롯데면세점 39%·신라면세점 30%·신세계면세점 18%로 뒤바뀌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9일 인천공항공사가 공고한 ‘제4기 인천공항 면세점 DF4구역 입찰’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인천공항 T2에 입점한 롯데면세점 주류·잡화코너 전경. 사진=연합뉴스

롯데면세점, 사업권 탈환해 면세업계 1위 건재함 보여줘

이번 입찰 결과는 국내 면세점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의 건재함을 보여준다. 코로나19 등 대외 악재로 실적 반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4기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DF4(주류·잡화) 사업권을 확보하며 자존심 지키기에 성공했다.

40년 면세사업 경력을 보유한 롯데면세점은 해외 진출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시장점유율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부터 외형 성장을 위한 해외공략을 본격화한 것.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진출을 시작으로 미국 괌, 일본 오사카, 베트남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현재 해외 13곳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 문을 연 베트남 다낭공항점과 나트랑깜란공항점은 그 해 흑자를 기록하며 해외 매출을 이끄는 등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오세아니아 진출에 이어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 사업권을 획득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롯데듀티프리 전선’을 구축하게 됐다.

온라인을 앞세워 성장세가 가파르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롯데면세점은 2013년 첫 진출 후 2019년에는 온라인 매출 3조원을 달성하며 인터넷 면세점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최근 2~3년 간 오프라인 유통업의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점에 비하면 소기의 성과다.

롯데면세점은 일찌감치 온라인 사업 비중을 강화했다. 온라인 매출 비율은 2013년 8% 수준에서 지난해 30%를 넘어섰다. 6년 새 4배 가까이 성장한 셈. 지난해 롯데면세점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명동 본점 5조7142억원을 포함해 국내에서는 9조원의 매출고를 올렸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해외사업이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면세사업자로 도약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라면세점은 2010년 초 일찌감치 해외를 공략해 아시아 3대(싱가포르 창이·마카오·홍콩 첵랍콕) 공항에 진출하는 등 풍부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있다. 해외에 입점해있는 매장 전경. 사진=호텔신라

신라면세점, 풍부한 해외사업 발판 ‘인천공항 사업권’ 확보 

면세업계 글로벌3위인 호텔신라는 2010년 이부진 사장 취임 이후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공략해왔다.

아시아 3대 국제공항에서 면세점을 거느리고 있는 등 사업 경험이 풍부한 데다 사업권 반납에 따른 패널티가 없다는 점이 평가에 반영된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2013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진출을 시작으로 마카오 국제공항·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태국 푸켓 시내면세점, 일본 도쿄 시내면세점·기내 면세점 등 5곳 해외면세점을 거느리고 있다.

매출도 고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16일 관세청(기업 매출액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신라면세점 매출액 7조8730억원 가운데 시내면세점 3곳 매출은 6조5873억원, 공항면세점 매출은 966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매출 대비 약 83%는 시내면세점에서 벌어들인 셈이다. 시내면세점 3곳 중 본점에서만 4조2629억원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2곳도 1조원 넘게 벌어들였다.

해외면세점 성장세도 괄목할 만하다. 신라면세점은 국내 면세사업자 중 해외 매출이 가장 높은 곳이다.

2017년 12월 개점한 홍콩 첵랍콕국제공항 면세점은 이듬해인 1분기 매출 942억원, 당기순이익 11억원으로 영업 1분기 만에 흑자를 달성했으며, 2018년 업계 최초로 해외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을 포함한 아시아 핵심으로 손꼽히는 3대 공항 운영 경험을 통해 전문성·차별성 확보해왔으며 향수·화장품 품목에서 세계 최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난 2018년 11월 서울 강남 코엑스 단지 안에 시내 면세점을 열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8층부터 10층까지 총 3개 층에 1만4천250㎡(약 4천311평) 규모로 '럭셔리, 뷰티&패션, 한류'를 3대 콘셉트로 해 국내외 정상급 브랜드 420여 개가 입점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백화점, 신세계와 경쟁에서 승기잡아…‘선택과 집중’ 통했다

업계 후발주자로 뛰어든 현대백화점 약진도 돋보인다.

현대백화점 면세사업부는 이번 4기 면세점 입찰전에서 향수·화장품, 주류·담배 등 임대료도 높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 대신 패션·잡화 영역에 집중한 모습이다. 아울러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최근 현대백화점 면세점 강남무역센터점에 까르띠에·프라다·구찌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잇따라 유치한 점도 이번 입찰권을 확보하게 된 주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아직 공항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권은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최소보장금(임대료)이 작아 승부를 걸만한 곳을 공략했다”며 아울러 이번 입찰에서 패션‧잡화에 집중한 것은 회사가 가장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데다 기존 패션·가구 등 기존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우려도 나온다. 앞서 롯데면세점이 2017년 입찰에서 높은 금액을 제시해 사업권을 확보했으나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매장을 철수한 전력이 있어서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면세점 대외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도 위험요소다. 최근 국내외 여행객이 줄면서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약 2만명으로 평년 대비 10% 수준에 그친다. 이에 면세점 2월 매출은 전월(2조247억원) 대비 11.3%로 줄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출의 80%가 임대료로 나갈 정도로 수익이 악화된 상황”이라며 “최대 고객인 중국 보따리상의 입국이 막히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