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사업으로 시작해 유통계 거인으로 거듭 나…신념으로 일궈낸 70살 ‘롯데’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사진=롯데지주

[뉴스워치=김주경 기자] 1948년 일본에서 껌 장사로 시작해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일궈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한 눈 팔지 않는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은 ‘신념’으로 요약된다.

그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까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경영철학은 지금의 롯데그룹을 있게 한 초석이 됐다.

신격호 회장은 갓 스무살 나이에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껌 장사를 통해 롯데를 세워 재계 5위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말년에는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 기업 비리 재판 등으로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가 일궈왔던 99년의 삶은 그야말로 굴곡진 인생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수년 간 숙환으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신영자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신 명예회장의 젊은시절 모습. 사진=롯데그룹

◇ ‘껌 장사’에서 시작해 재계 5위로 성장

그는 1922년 10월 경남 울산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집안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1942년 단돈 83엔(약 870원)으로 일본 관부 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이후 신문·우유를 배달하며 고학 생활을 이어갔다.

1944년 군수용 커팅 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제조 공장을 세워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공장이 전소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잿더미로 변한 공장에서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 주둔한 미군을 상대로 껌을 생산·공급하는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껌의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팔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영감을 얻었으며 이를 계기로 사업가로 성공하게 된다.

사업가로 발판을 다진 그는 1948년 자본금 100만엔과 종업원 10명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가 지금의 ‘롯데’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중공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조방식이 어려웠던 초콜릿을 생산해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 식음료 사업에 연이어 도전해 종합제과기업으로서 성공을 거둔 신 명예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게 된다. 호텔·관광, 유통, 화학 등을 아우르며 롯데그룹은 재계 5위권의 대기업으로 도약했다.

특히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해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도약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989년 7월 12일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롯데그룹

◇ 롯데호텔·롯데월드…신격호 회장이 만들어낸 ‘신념’의 결과물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표 사례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이다.

한국전쟁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서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신 명예회장의 신념이 만들어낸 성과다.

1973년 지하 3층, 지상 38층에 1000여개의 객실을 갖춘 초고층 롯데호텔을 건립했다. 한국전쟁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서 관광산업을 일궈내겠다는 신 명예회장의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는 외국 관광객이 찾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롯데호텔 건립을 추진했다. 6년의 공사기간 동안 무려 1억 5000만 달러의 자본이 들어갔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투자금과 맞먹는 수준이다.

신 명예회장은 외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롯데호텔 건립을 추진했다. 호텔 사업은 신 명예회장에게 모험이었다. 6년의 공사기간 동안 투자한 자본금만 1억 5000만 달러였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투자금과 맞먹는 규모다.

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만큼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의 안목은 적중했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을 계기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최고급 호텔 서비스를 선보이며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일조했다.

롯데호텔은 1992년 업계 최초로 2억 달러 관광진흥탑을 수상했다.

아울러 다른 외국계 체인 호텔들과 달리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국내 호텔체인을 일궈냈다.

신 명예회장은 호텔에 이어 놀이공원 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게 된다. 호텔만으로는 외국인 관광객을유치하기가 어려워서다.

그는 1984년 서울 잠실에 놀이공원인 롯데월드 조성하라고 지시한다. 당시만 해도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테마파크를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가질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았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신 명예회장의 신념이 깃든 경영 철학은 롯데그룹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길잡이 역할을 했다.

롯데그룹의 신규 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진행했다.

이는 평소 신 총괄회장의 경영철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명실상부한 그룹이 되려면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업체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건의하자 신 명예회장이 “무슨 소리냐,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며 일축한 일화는 신 회장의 평소 소신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처럼 신 명예회장은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 기업인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사진은 2011년 6월 5일 롯데월드타워 건설현장을 방문한 신 명예회장. 사진=롯데지주

◇ 오랜 숙원사업 ‘롯데월드타워’ 30년 만에 일궈내

신 명예회장이 일궈낸 마지막 숙원사업은 바로 롯데월드타워다.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빌딩을 포함해 80만 5782㎡ 부지에 지어진 롯데월드타워는 그 자체만으로 상징성이 큰 관광명소다.

당초 롯데월드타워는 1982년 롯데물산을 운영주체로 선정해 물꼬를 텄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2017년 개관했다. 사업이 시행되기까지 무려 30여 년이 소요된 셈이다.

그의 불굴의 신념이 만들어낸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고인의 말년은 평탄하지 못했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다.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며 끊임없없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공격했다.

그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을 수차례 열어 신동빈 회장 해임안을 제출하거나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해 동생을 압박했다.

하지만 주주들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신임이 굳건했다. 그는 롯데홀딩스 최대 주주인 광윤사 지분을 50%+1주 가진 최대 주주였지만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요 경영진이 신 회장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동주 전 회장에게 의지했던 신 명예회장은 2017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건강도 악화됐다. 법원은 신 명예회장이 정상적인 사고능력이 부족하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90대 고령에 수감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고령이라는 점과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하게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신동주 전(前)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침통한 표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신동빈 원톱 체제 공고…경영권 분쟁 등 변수 사실상 미미

신 명예회장이 타계했지만, 신동빈 롯데회장 원톱체제는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톱’ 체제를 공고히 해 왔다. 국내에서는 유통과 화학 부문을 양대 축으로 글로벌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그가 그린 청사진대로 향후 경영활동은 무리 없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상속 등의 문제를 언급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롯데그룹의 숙원은 한국과 일본을 양대 축으로 하는 경영구조를 신동빈 회장 중심으로 통합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배구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호텔롯데 IPO(기업상장)도 필수적이다. 롯데 지배구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롯데지주’로 연결된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이자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국내 일반주주의 지분율을 높이고 일본 자본의 비율을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제시한 상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이 안타깝게 별세했지만 그룹 경영에 달라질 것은 없다. 롯데그룹 경영은 신동빈 원톱 체제로 흔들림없이 진행된다”며 “상속 등의 문제는 아직 언급할 단계는 아니고 우선 장례를 차질없이 치른 다음에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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