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 ‘꼬리표 떼기’ 움직임 분주…실적 개선 여부에 따라 최종 ‘판가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롯데백화점 전경. 사진=호텔호텔

[뉴스워치=김주경 기자] 롯데그룹이 지난 2016년 철회한 호텔롯데 상장을 놓고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물밑 작업이 분주하다. 지난해 롯데리츠 공모에 성공한 데다 호텔 롯데 실적이 개선되면서 연내 상장 여부를 놓고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롯데그룹은 안팎으로 어수선했다. 3년 4개월 간 신동빈 회장과 롯데를 옥죄어온 ‘사법 리스크’에 대한 타격이 컸던 데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에 따른 후폭풍의 영향으로 유통과 주류 부문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화학 부문도 대외적 업종 악화 영향으로 타격이 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공감 경영’을 키워드로 내세워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급변하는 대외 리스크와 각종 경영변수에 대응하기 위해선 고객과의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이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지난해 7월 일본 제품 불매운동 타격의 영향이 컸다.

그간 롯데는 2015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매년 국적 논란에 휘말려왔다. 이에 유통·패션·주류 등 각 계열사들은 ‘일본기업’이라는 오명으로 실적부진을 겪어야 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된 직후 유통BU 전반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그룹 내 전체 매출 가운데 약 30%를 차지하는 유통 부문 실적 악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실제로 유통 분야의 맏형 격인 롯데쇼핑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 영향으로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은 5.8%, 영업이익은 무려 56% 급감했다.

지난 9월 영업 종료한 서울 노원구 월계동 유니클로 매장. 사진=연합뉴스

이 가운데 무인양품·유니클로·아사히맥주 등 일본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한 기업들의 타격이 가장 컸다.

‘유니클로’ 한국법인 에프알엘코리아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이 51%, 롯데쇼핑이 49%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불매운동 기간이 포함된 2018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영업이익은 199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4.9% 감소한 수치다. 직전 회계연도 영업이익이 32.7% 증가한 것에 비하면 실적이 급감했다.

무인코리아(무인양품)'와 롯데아사히주류(아사히맥주)도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편의점업계 매출집계에 따르면 아사히맥주는 한참 잘 나갈 때는 전체 수입맥주 매출 가운데 시장점유율이 28.9%로 수입맥주 1위를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지난 2.8%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롯데주류도 불매운동의 타격이 컸다. 일본 아사히가 롯데주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주류는 일본 불매운동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 소주 매출이 20%가량 줄어드는 등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며 “지난달 소주 매출 감소폭은 10% 수준으로 축소됐지만, 소주 불매운동은 실적 부진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앞서 롯데는 지난해 10월 말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반일감정에 따른 일본 불매운동 등의 영향과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진 영향이다.

당시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투자의 적절성을 철저히 분석해 집행하고 예산관리를 강화해 임직원에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며 “향후 발생 가능한 외환 및 유동성 위기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017년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후 법정을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위기감은 올해 정기임원 인사와 신동빈 회장의 신년 메시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달 19일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롯데지주는 빠른 의사결정과 주요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2명의 대표이사가 각각 업무권한을 갖는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롯데지주는 황각규 부회장과 송용덕 부회장 ‘투톱’ 체제로 운영된다.

송 부회장은 인사·노무· 경영개선 업무 등 안살림을 맡고 황 부회장은 그룹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미래 먹거리를 모색하는 등 바깥 살림을 맡아 ‘뉴 롯데’ 완성을 이끌게 된다.

아울러 신동빈 회장은 올해 신년사 메시지로 ‘공감·공생’을 경영 키워드로 내세워 임직원들에게 고객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것을 주문했다.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고객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한 때문.

신 회장은 신년사에서 “고객과 꾸준한 소통을 통해 고객의 니즈, 더 나아가 시대가 추구하는 수요를 빨리 파악해 창조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른 기업보다 한 걸음 더 빠르고, 어제보다 한 뼘 더 나은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이 추구하는 ‘뉴 롯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호텔롯데 상장(기업공개)이 절실하다.

만약 호텔롯데가 상장되면 ‘일본기업’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롯데 지배구조 현황. 사진=연합뉴스

현재 롯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롯데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이자 일본 롯데와 연결고리 역할을 맡고 있다.

문제는 일본 롯데홀딩스, L투자회사 등 일롯데 계열사들이 호텔롯데 지분 100%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호텔롯데는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롯데물산 등 핵심 계열사 주요주주이므로 현재는 일본롯데가 호텔롯데를 내세워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이에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해 국내 일반본주주 지분율을 높이고 일본 자본의 비율을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만약 호텔롯데가 상장되면 일본롯데홀딩스의 지분 99% 중 약40% 가량이 국내 일반주주 지분으로 편입돼 일본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다.

롯데그룹의 호텔롯데 상장추진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호텔롯데는 2015년 IPO를 추진할 때 대표 주관사로 KDB대우증권, 메릴린치인터내셔널, 시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선정했다.

공동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골드만삭스증권회사 등이 꼽혔다. 2015년 12월 유가증권상장을 위한 상장심사를 청구해 2016년 1월 한국거래소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나 경영권 분쟁, 면세점 특혜 의혹에 휘말려 상장을 철회했다.

이후 호텔롯데 IPO는 2017년 각종 대외 리스크와 사업부진, 오너리스크 요인으로 쉽사리 추진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신동빈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데다 최근 면세 사업 등에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어 IPO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호텔롯데가 IPO를 추진하면 국내 IB(투자은행) 사이에서 롯데를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아직 IPO 추진을 위한 명확한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 실적 개선 등에 견줘볼 때 IPO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고 있는 건 맞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사무동 입구. 사진=연합뉴스

한편 롯데그룹이나 호텔롯데는 IPO 상장과 관련,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증권가업계에서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한편 기업설명회(IR) 전담팀을 꾸려 본격적인 실무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부적으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그룹 지주회사 출범 때부터 시장에 밝혔다시피 호텔롯데 상장은 항상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IPO는 기업가치가 제대로 반영돼야 하는 작업인 만큼 우선은 주요 사업에서 내실을 다진 다음 면세점 사업 등 의미있는 성과가 나와야만 구체적인 시기 등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호텔롯데 한 관계자도 “몇년 간 안팎으로 각종 리스크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경영타격이 컸던만큼 지금은 내부재건에 힘쓰고 있다”면서 “최근 이뤄진 회사채 발행은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재무활동이므로 호텔롯데 상장과는 별개라 보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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