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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시대의 광복절박성호 / 동덕여대 교수

올해 광복절 70주년을 맞아 예년에 비할 수 없는 다양한 행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지난 5월엔 2차 대전 참전국인 유럽과 러시아가 승전기념 7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무더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여름에, 정부는 광복절 전날인 14일을 임시공휴일을 편성하고 기념식과 불꽃축제 등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하였다.

우리의 광복절은 사실 쑥스러운 감이 없지는 않다. 우리의 힘으로 얻은 주권회복이 아닌 남의 나라와의 싸움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여 그 부산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는 선진국대열에 우리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사회의 변화'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485조원으로 1953년(477억원)과 비교해 3만1000배 증가했다. 지난해 한국의 명목 GDP는 1조4104억 달러로 세계 13위다. 이제는 산업현장에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고 농촌에 외국인 여성을 아내로 받아들이는 일이 새로운 일이 아닐 정도로 국제화 되었다.

의화단운동의 여파로 우리나라에 대거 들어온 화교들의 수가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등의 정부정책으로 많이 줄어든 대신, 1990년대에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되어 특히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와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1999년 16만 8950명으로 증가하였다. 외국인 근로자 규모가 확대되고 결혼이민자 및 자녀가 증가했던 2000년대 이후엔 그 수가 급증하여 출입국관리사무소 기준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은 179만 7600명이고 중국, 중국(한국계), 일본, 베트남, 필리핀, 몽골,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남부아시아, 중앙아시아, 미국,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출신국도 다양화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밟으며 형성되어온 우리 다문화 사회의 성격은 매우 독특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중심이 된 외국과는 달리 외국인 여성이 우리나라 남성과 혼인하여 어머니만이 외국인인 다문화가정이 다수 존재하며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한국특유의 다문화 사회의 성격은 이에 대한 대책이 외국의 그것과는 달라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광복 70주년의 각종 행사에 다문화가족들도 초청되어 자리를 함께 하였다. 기념식에 초청되기도 하였고 거리행진을 함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광복 70주년을 함께한 다문화가족들이 한국의 광복 70주년의 의의에 얼마나 공감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을까? 대부분의 경우 그냥 행사에 참석한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까?

위키백과를 보니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지배 지역이 인도 뱅골만에 있는 안다만 제도와 니코바르 제도, 알래스카 남서쪽의 애투 섬과 키스카 섬, 영국령 북보르네오, 브루나이, 버마(미얀마), 크리스마스 섬, 길버트 제도, 괌, 홍콩, 말라야, 네덜란드령 동인도, 카이저빌헬름슬란트, 필리핀, 포르투갈령 동티모르, 말레이시아의 사라왁주, 싱가포르, 웨이크 섬 등이었고 식민지도 한국이외에도 동청 철도 지역, 지금의 사할린인 가라후토 청, 타이완 등에 이른다. 이중 상당수 국가 출신의 외국인이 한국의 다문화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영국이나 미국 등과의 관계가 엉켜있지만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로 우리와 같은 동병상련의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역사를 반영한 광복절 기념식이 함께 있었다면 이들이 가지는 광복 70주년의 의의 역시 남달랐을 것이며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보다 다양하고 무게가 깊었으리라 생각된다.

광복 70주년에 참여하는 다문화가족들의 특성을 좀 더 배려하여 이들도 진정으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문화적 광복절 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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