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외부칼럼
미얀마에서 온 편지(38) 편지에 대하여 #2. 토냐의 마지막 편지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저도 지금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살면서, 처음 ‘편지’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참 망설였습니다. 편지는 아주 사적인 소통방식입니다. 서간체 형식은 어떤 사건과 이야기이든 개인이 느낀 감정, 지식, 탐구, 질문들로 채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답장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 사람이 보니까요. 물론 여러 분들이 답장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어느 날부터, 한사람을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맘이 편합니다. 그 한사람은 저의 어떤 얘기도 들어줄 거 같습니다. 미얀마에서 겪는 자잘한 이야기, 보잘것 없는 사람들의 애잔한 이야기, 외롭거나 기쁜 삶들,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들, 사랑과 음악과 시와 꽃들에 관한 저의 지난 이야기들을.

하지만 오늘은 저 대신 한사람의 편지를 보냅니다. 제가 꼭 보여주고 싶었던 편지입니다. 닥터 지바고의 아내 토냐. 그녀가 이 시대를 향해, 소설 속에서 나와 한통의 편지를 띄웁니다. 영화만 본 사람들에게도. 토냐의 편지를 지바고가 읽습니다.

<유라, 우리들 사이에 딸이 생겼다는 것 알고 계신지요? 돌아가신 당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뜻으로 마샤라고 이름지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아버님을 비롯한 우리 가족은 국외 추방명령을 받았어요. 불행한 것은, 당신을 빼놓고 우리들만 추방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무서운 시대에 이렇게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된 것만도 주님께 감사해야겠지요. 당신도 여기 계셨더라면 함께 떠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나는 당신이 꼭 살아 계셔서 언제든 모스크바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확신해요. 내 마음 속의 사랑의 목소리가 그렇게 일러준답니다. 러시아의 사정이 완화되면, 해외여행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는 우리 가족도 다시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되겠지요.

무엇보다 슬픈 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예요. 나는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나의 결점을 모두 들추어내 보기도 하고, 우리 부부의 생활을 돌이켜보기도 하면서, 이런 불행을 초래한 원인을 발견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계신 것만 같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아아,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걸 당신이 아신다면! 나는 사랑해요, 당신의 모든 장점 뿐만 아니라 결점까지도. 그것들은 서로 하나의 비범한 결합을 이루어 당신의 평범한 용모에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의지력을 보충해주고 있는 당신의 그 재능과 지혜 또한 내게는 귀중한 것이에요. 나는 당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라, 당신은 내가 말하는 뜻을 아시지요? 혹시 냉혹한 우리의 슬픈 사실을 알고, 당신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리라 생각되시겠지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하고 죄스런 일인가 두려워, 그런 생각을 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도 당신도 결코 그것을 알 수는 없어요.

샤샤도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젠 튼튼하게 자랐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눈물이 가슴을 파고들어와 이젠 더 이상 쓸 기력이 없어요. 앞으로 끝없이 계속될 고난의 가시밭길에 주님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어요.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만약 당신만 좋으시다면 당신이 원하는대로 살아주세요.

우리의 숙명적인 고장 우랄지방을 떠나기 전에,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라라와 가까이 사귈 기회도 가졌어요. 내가 괴로울 때 언제나 옆에 있어 주었고, 해산 때도 많은 힘이 되어주었어요.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주 좋은 분이었어요. 그러나 나와는 정반대 되는 사람이더군요. 나는 인생을 보다 단순하게 살면서 곧은 길만 걸으려고 태어났지만, 그녀는 인생을 복잡하게 살면서 변화있는 길을 걸으려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이젠 펜을 놓아야겠군요. 편지를 가지러 왔어요. 아아, 유라. 나의 귀중한 남편 유라, 어찌하면 좋을까요? 우린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만나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를 당신은 아시나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네? 유라! 유라!>

지바고는 말할 수 없는 비탄과 고뇌 때문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빛 잃은 눈을 편지에서 떼었다. 주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창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워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