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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37) 편지에 대하여 #1.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미얀마의 그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의 처녀작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로테에게 권총을 빌려 자살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편지입니다.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내게로 왔습니다. 먼지를 털어주셨다구요? 나는 천번도 더 권총에 키스를 했습니다. 당신의 손이 닿았던 것이니까요. 하늘의 정령인 당신이 나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줍니다. 당신의 손에서 죽음을 받고 싶었는데, 아아, 지금 그것을 받은 것입니다.

로테, 나는 이 옷을 입은 채로 묻히고 싶습니다. 로테, 당신의 손이 닿아서 거룩하고 정결해진 옷입니다. 또한 아무도 내 주머니를 뒤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본홍색 리본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가슴에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요. 아아, 나는 얼마나 당신과 굳게 결합되어 있었을까요! 이 리본도 함께 묻어주십시오. 내 생일에 당신이 선물로 준 것입니다. 아아, 이런 일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부디 진정하십시오. 탄환은 이미 재어놓았습니다. 시계가 지금 열두 시를 치고 있습니다. 로테, 로테! 잘 있어요, 부디 잘 있어요!”

이 긴 마지막 편지는 제가 압축한 것입니다. 미얀마엔 소설책들이 없어 한국서 사진으로 받으니 총 4페이지의 긴 편지입니다. 소설 자체가 서간체이긴 합니다. 당시 유럽엔 이 소설의 열풍으로 많은 군인들이 이 소설을 배낭에 넣고 전쟁터로 나갔다고 합니다.

▲ 미얀마 군인들

제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고교시절입니다. 그후 이 소설의 현대판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쓰려고 구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있던 시절입니다. 지금도 편지 하면, 이때가 떠오릅니다. 평생 가장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듯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입니다.

34개월간 300여 통을 썼습니다. 받은 것도 100여 통이 넘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들이 만나는 걸 반대해서 편지가 자꾸 증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편지에 번호를 붙이라고 했기 때문에 기억합니다. 자대에 배치받아 이등병으로 가니 고참들이 가장 먼저 여친 있냐고 물어봅니다.

그 당시엔 이상하게 내무반에 연애편지 오는 일이 없습니다. 사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편지만 옵니다. 너무 자주 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고참병장들이 제게 온 편지를 한 상병에게 대독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낯부끄럽겠습니까. 편지 내용에 얼마나 친근하고 다정한 표현이 많을까요. J에게. 제 이니셜입니다. 편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다들 피곤한 몸을 눕히고, 편지를 읽으면 아주 고요합니다. 마치 자기 여친한테 온 것처럼. 참 불쌍하단 생각이 듭니다. 몇 달 그렇게 낭독하다보니 저도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근황을 모두 환하게 압니다. 그녀가 본 영화도 우리 모두 스토리를 압니다. 그녀가 다닌 교회의 목사님  설교내용도.

그렇게 2년이 흘러갔습니다. 저도 곧 병장이 됩니다. 10개월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편지가 뚝 끊어졌습니다. 저는 편지를 계속 보냈습니다. 군대의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뭘 그리 쓸 게 많았는지. 나중엔 매일 써둔 걸 모아서 일주일에 한번씩 소포로 부쳤습니다. 이른바 두루말이 편지.

처음에는 제 편지가 증발된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그후에 부모님과 엄청 다퉜다고 온 게 마지막입니다. 제가 병장이 되고 제대가 6개월 남은 어느 날. 그녀가 면회를 왔습니다. 긴 머리의 단아한 그녀의 모습과는 딴판으로 카트된 머리에 살은 쪽 빠지고, 웃음기 있는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만나자마자 눈물을 글썽입니다. 저는 우리 젊은 날에 ‘운명 같은 날’이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약혼날짜가 잡혔다는 겁니다. 그녀는 맏딸인데 평소 우리가 사귀는 걸 반대하던 부모들이 서로 잘 아는 집안끼리 혼사를 정한 겁니다. 내년에 약혼을 하고 이듬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그 상대는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얘기해줘. 제가 진지하게 간청했습니다. 그녀가 말한 걸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제대도 해야 하고 남은 학업도 해야 하고, 게다가 어머니도 안계시고 아버진 시골 어디선가 계시고, 취직해서 기반을 잡기까지 장녀인 네가 모범으로 살기 어렵다는 겁니다. 제가 할말이 없습니다. 눈물을 닦아내는 그녀를 돌려보내고 막사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내무반 분위기가 싸늘합니다. 최고참이 이별을 했습니다. 편지도 낭독되지 않습니다. 우리 고참은 먹지도 자지도 않습니다. 보초를 서면 새벽에 쫄병들 시간까지 이어서 다 서줍니다. 게다가 갑자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사다놓고 읽고 있습니다. 중대장이 소대장에게 물어보았답니다. 그 소설이 뭔데? 사랑하는 여자한테 권총을 빌려 자살하는 내용이랍니다. 그 여잔 약혼자가 있었답니다. 야, 정병장은 탄창에 실탄 빼고 초병 내보내라.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제가 나섰습니다. “중대장님, 저는 탈영도 안하고 자살도 안합니다. 근데 꼭 하나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제가 밤에 잠을 못잡니다. 잠이 안옵니다. 그래서 밤에 막사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릴 테니 그것만 봐주십시요.” 고민하던 중대장이 “그럼 밖에 불빛이 안나가게 하고 할 수 있겠어?” 저는 이젤과 캔버스를 준비하여 밤마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대하기 며칠 전, 그간 그렸던 그림들을 모두 그녀의 집주소로 보냈습니다. 부치기 전 그림을 보니 3년간 지냈던 군영 안의 모든 풍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쓸쓸한 막사와 나무들, 그리고 여러 갈래의 길들과 꽃들. 그제서야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그리고 초병으로 근무하며 구상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제가 나중에 쓴, 다른 제목의 소설로 태어났습니다. 그 내용은 어쩔 수 없이 각각 헤어진 연인. 그 분신의 자녀들이 기이하게 만나 서로 사랑하는 스토리입니다. 두 연인은 먼훗날 자녀의 결혼식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 불면의 새벽, 베르테르가 된 저는 그녀와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었던 겁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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