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외부칼럼
미얀마에서 온 편지(36) 눈을 들어 추수할 밭을 보라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미국에서 결혼하는 여동생을 축하하며. 앞에 선 사람은 언니이자 사모 룬.

오늘은 조금 떨어진 한 부족 공동체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갑니다. 초대해서 갔더니 아이들만 있는게 아니고 양곤 시내에 있는 부족의 어른들도 많이 왔습니다. 무슨 날인가 봅니다. 이방인은 저밖에 없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프린팅된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Thanboi & Muannu. 두 젊은 남녀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리는 사진입니다. 미국에서 결혼했다는데 왜 이렇게 많이 모였냐고 물어봤습니다. 자기네 부족에서 우여곡절 끝에 미국간 것만 해도 대단한데, 부족의 남녀끼리 결혼했으니 감사예배를 드린다는 겁니다. 게다가 결혼한 신부는 이 공동체를 돌보는 현지인 목사 사모의 여동생입니다.

미얀마에는 정부가 인정하는 135부족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더 있습니다. 부족마다 결집력이 대단합니다. 결혼도 부족끼리 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부족은 약 5만여 명이 됩니다. 소수 부족이기에 결혼을 하거나 장례를 치를 때는 수천명이 모입니다. 장례식에 한번 갔다가 놀랐습니다. 장례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당에서 감사예배가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이 ‘증언’합니다. 진행이 좀 색다릅니다. 한바탕 웃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 학생들이 연습한 특별찬송과 성경봉독과 설교가 이어집니다. 이제 곧 저녁 ‘초대만찬’이 시작되겠지요.

결혼하는 두사람은 말레이시아에서 난민으로 떠돌다가 유엔난민카드를 받아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에서 서로 돕다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하면서, 제 마음속에 한사람이 떠오릅니다. 미국 ‘선교의 아버지’ 아도니람 저드슨. 그가 버마땅을 밟은지 꼭 202년만에 버마인 크리스찬이 미국땅에서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 버마 최초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1813년 7월13일. 이날, 저드슨 선교사는 미국 최초로 버마 랭군에 가족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지낸 기록을 보면, 미국 초기선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대변합니다. 미국 선교사가  최초로 파송한 곳이 우연치 않게 버마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도로 갔다가 입국이 거부되어, 자신이 원했던 버마로 향합니다. 이곳에서 투옥, 가족들을 잃는 슬픔, 가난과 질병 속에서 하나님과 단절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평생 살며, 고난 속에서 복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건강이 악화된 1816년 1월에 신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그후에 기념비적인 미얀마 영어사전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미얀마인 목회자들이 쓰는 성경이, 2백년전 저드슨 선교사가 완성한 것입니다. 1819년 마웅 나우(Maung Naw)라는 버마인에게 첫 세례를 주었습니다. 버마땅에 온지 6년만의 일입니다. 그 정도로 이곳은 척박한 선교지였습니다. 1820년 처음으로 크리스찬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해 10명의 버마인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긴 세월 끝에 얻은 결실입니다.

저드슨은 16세에 명문 브라운대학교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앤도버 신학교를 마친 총명한 젊은이였습니다. 유명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지만, 그는 미국 침례교 해외선교부가 탄생하면서 평생을 선교사업에 헌신하기로 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간 나라는 인도였지만, 추방명령을 받고 배를 다시 탄 곳이 당시의 버마였습니다. 이곳은 이미 외국인에 대한 박해가 심하다고 알려진 나라였습니다.

1820년대는 버마와 영국이 ‘식민지 전쟁’을 하던 때입니다. 버마정부는 모든 외국인들을 영국의 첩자로 간주하여 투옥했습니다. 저드슨은 캄캄한 감옥에서 벌레들과 싸우며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저드슨의 아내 낸시는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고, 몇달 후 둘째 아이도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첫 아이는 도착 초기에 이미 잃었습니다.

▲ 양곤 교외 크리스찬 묘지.

가족을 잃은 슬픔과 무거운 죄책감. 저드슨은 2년간을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고독속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깊은 좌절속에서 산 시기입니다. 하지만 상처가 씻기어지고, 그는 미얀마 전역을 순회하며 하나님의 손길과 자신의 소명을 깊이 느끼며 깊은 좌절에서 일어났습니다. 37년간을 버마에서 보낸 저드슨의 말년에는 7천여 명의 신자와 163명의 선교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1859년 그는 병이 들어 치료를 위해 귀국하는 배에 올랐지만, 항해 도중 세상을 떠나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62세였습니다. 가족들의 희생과 저드슨의 고귀한 헌신. 지금 미얀마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게 된 씨앗입니다.

이제 감사예배가 끝나고 저녁만찬이 시작될 시간입니다. 그런데 감사기도를 티처 정에게 부탁한다고 갑자기 마이크를 넘깁니다. ‘이방인’에 대한 배려일까요? 그래서 제가 기도합니다. 통역은 저희 NGO 스탭 삐양씨가 맡아서 해줍니다.

“미얀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지금 우리가 미국으로 가진 못하지만, 딴브이와 뮤아누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 이제 타국에서 빈 손으로 시작하는 우리 부족의 아들과 딸들을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부족의 아들 딸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전진하게 해주세요.

2백년전 주님께서 미국의 한사람을 보내셔서 뿌린 씨앗이 이제 미국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렇게 감격스런 축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한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 부족도 이제는 난민으로 떠돌지 않고, 고향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신부의 언니 룬을 기억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워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