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자카란다 꽃이 흐드러진 보라색 가로수길이 황홀하다.

미얀마 사람들은 참 꽃을 좋아합니다. 택시를 타면 실내는 더러워도 앞유리창에 쟈스민꽃을 대롱대롱 매달고 갑니다. 시골에 가면 아낙네들이 머리에 프리지아를 꽂고 삽질을 합니다.

불상 앞에는 나라꽃인 노란 빠따욱을 한아름 놓고 불공을 드립니다. 교회 장례식엘 가보니 백합, 노란색 난과 국화, 글러디올러스 등 갖가지 꽃으로 ‘가는 길’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부잣집에는 부겐베리아, 제라늄 등을 보란 듯이 화사하게 마당에 키웁니다.

미얀마 문화를 이해하려면 꽃을 알아야 합니다. 춤공연을 가보면 춤이 곧 꽃입니다. 그걸 모르면 재미없습니다. 미얀마의 전통춤은 우아하며 부드럽습니다.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춤을 꽃에 비유합니다. 무용수의 머리는 꽃송이입니다. 두 손은 꽃잎입니다. 몸통은 꽃대를 표현합니다. 몸의 다른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에 꽃대가 흔들립니다. 꽃잎이 세차게 흔들립니다. 꽃송이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머리와 허리와 두 손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며 율동이 펼쳐집니다. 그 주변에 다른 꽃들도 다가옵니다. 나무들도 있습니다. 가끔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그게 남자무용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 해피엔딩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좀 생각하게 하는 노래제목입니다. 은유법인가? 그런데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할머니입니다. 꽃을 가르쳐준 제 스승입니다. 꽃을 보면 그분이 생각납니다. 제가 1년간 고향으로 내려가 바닷가에 살 때의 일입니다. 해변가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는데, 여름만 빼고는 거의 손님이 없습니다. 거기서 만난 분입니다.

(Sweet violet)

손님은 없는데 가보면 늘 새로운 꽃이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붉은 장미, 수선화, 다알리아, 백합, 심지어는 해바라기도 있습니다. 할머니, 저 꽃을 어디서 가져옵니까? 제가 묻습니다. 우리 마당에서. 할머니가 답합니다. 보통 할머니가 아닙니다. 저런 꽃을 마당에서 키우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을 건넵니다.

“할머니, 장미가 어느 나라꽃일줄 아세요?”

“영국 아닌가? 붉은 줄장미 거기서 많이 키운다던데.”

“맞아요. 그럼 어제 그 다알리아는?” “몰라.”

“멕시코 나라꽃이랍니다.”

“해바라기는요?” 제가 자꾸 묻습니다. “몰라.”

“페루의 나라꽃입니다. 그리스 꽃은 향제비꽃. 캘리포니아주 꽃은 양귀비.”

“그런 꽃도 나라꽃으로 정하나 보네. 근데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제가 돌아다니며 봤으니까요. 할머니는 무슨 꽃을 좋아합니까?”

“도라지꽃. 무리지어 피면 참 보기 좋아. 봄에는 찔레꽃도 좋고. 가을엔 산에 가면 싸리나무꽃도 잔잔하게 이쁘지.”

▲ 들녘에 핀 도라지꽃들.

이렇게 하여 할머니의 ‘한국꽃’과 저의 ‘해외꽃’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보면 할아버지가 옵니다. 그럼 얘기꽃이 지고맙니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남편 따라 시골 바닷가로 왔는데, 남편은 마당에 꽃심는 거 싫어한답니다. 먹을 걸 심어야지, 웬갓 꽃만 심는다고.

어느날 할머니네 집 마당엘 같이 가보고 제가 놀랐습니다. 그 넓은 마당과 베란다에 정말 꽃이 둘러처져 있었습니다. 배나무꽃, 복숭아꽃과 같은 나무에서부터 야생화까지. 저 보라색은 하늘매발톱꽃. 저 분홍은 금낭화. 저 노랑은 민들레. 여름이나 가을엔 패랭이꽃, 보라와 흰 도라지꽃을 뒷마당에 키워. 수국 같은 꽃은 키우기에 따라 여러 색깔을 만들 수 있어.

할머니의 꽃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때로는 분갈이를 해서 건네주기도 합니다. 저는 바닷가와 맞붙은 작은 아파트여서 꽃을 기르긴 좀 힘들지만 ‘사부’가 주는 거니까 일단 받아둡니다. 할머니는 시집와서 향수를 달래기 위해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꽃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할머니, 질 때 아름다운 꽃이 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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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벚꽃 자카란다

“자카란다(Jacaranda)란 꽃이 있는데, 로스앤젤리스 시의 꽃이죠. 거기 시립미술관 앞에 가면 가로수가 그 나무꽃입니다. 지금 5월이면 하늘보다 짙은 보라색 꽃잎이 길가에 떨어지는데 참 아름답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보라꽃인데… 어떤 사람들은 꽃잎을 주어다 투명어항에 띄워놓고 본답니다.”

“더 늙기 전에 한번 보고싶네.”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할머니, 창조주께서 왜 꽃을 우리 곁에 두었을까요?” 제가 좀 심오한 질문을 합니다.

“할머니,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살라고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어떻게 꽃보다 아름다워?”

제가 긴 1년을 파도와 사계절의 꽃과 살며 떠나던 날입니다. 할머니가 사각봉투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꽃씨야. 서울 가면 잘 키워봐. 가끔 꽃보러 오고. 내가 맘에 들게 키워놓을 테니. 그리고 씨 뿌린다고 다 싹이 트는게 아니야. 2, 3개월 걸리는 것도 있으니까 끈기있게 참고 기다려야 해.”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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