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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34) 버마전선의 통곡 #3. 랭군, 1944년 겨울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아웅산 장군이 암살 직전까지 살았던 저택 전경.

60년과 3년. 각각 영국과 일본이 버마를 통치한 햇수입니다. 하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짧았던 일본의 통치기간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합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되었고, 모든 도시가 페허가 되었습니다. 그 ‘분노와 치욕’의 시기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타킨(Thakin) 아웅산(Aung San).

▲ 아웅산 저택은 현재 박물관이 되었다.

타킨은 지도자를 뜻합니다. 당시 버마를 통치하던 영국에 공개적인 도전을 하던 지도자들 앞에 이 호칭을 붙였습니다. 아웅산은 영국 총독에 의해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는 중국 화물선을 타고 아모이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리던 일본 고급정보원들은 타킨들에게 버마독립을 위해 일본이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아웅산은 일본 토쿄을 거쳐 다시 랭군으로 돌아와 29명의 젊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일본으로 떠납니다.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질 이른바 ‘30인의 동지들’입니다.

이들은 일본 영토인 포모사(지금 대만)에서 강한 군사훈련을 받습니다. 당시 일본은 영국의, 중국으로 통하는 ‘버마 로드’ 건설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1942년 버마를 침공했습니다. 버마 독립군과 함께. 버마 도시들은 일본 수중으로 들어오고, 영국군이 인도로 철수하고 랭군이 함락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버마의 독립을 추진하기는커녕 버마 독립군을 해산시키고, 새로운 버마군대를 창설하여 일본 군사정부 아래 두어 통제했습니다.

▲ 아웅산 장군이 손님을 만나던 거실.

아웅산은 분노하였습니다. 1942년 5월에 만달레이가 함락되자, 아웅산의 비밀 결사대는 독립을 위한 지하운동을 시작합니다. 영국과도 접촉합니다. 그의 희망은 오로지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독립’이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배신감 뿐만 아니라, 일본이 국민들에게 행한 야만성에 대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공포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버마 여성들은 위안부로 강제동원되었고, 영국화폐를 미처 바꾸지 못한 사람들을 심한 고문으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 거실에 걸린 아웅산 초상화.

일본은 점령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게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웠습니다. 1943년 8월. 아웅산 장군은 자신의 비밀스런 계획을 버마 군대에 속한 카렌족 부대 지도자들에게 전달합니다. 1945년 3월. 아웅산 장군은 기다리고 기다린, 영국군 총사령관으로부터 전갈을 받습니다. 버마군대는 반란을 일으키고 비밀결사대와 시민들의 봉기가 한순간에 일어났습니다.

1945년 5월. 영국과 아웅산의 결사대는 버마 전 지역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3년 동안 버마는 최전선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의 폭격이, 마지막에는 연합군의 폭격이 온 도시를 페허로 만들었습니다. 큰 도시들은 산산조각이 나고, 작은 마을들은 없어지기까지 했습니다.

▲ 평소 쓰던 옷과 모자와 신발.

영국이 퇴각할 때는 ‘초토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유전, 금은과 텅스텐 광산, 항구시설과 차량들은 모두 폭파되었습니다. 일본이 점령했을 때는 의약품이 없어 수만명이 죽어나갔고, 셀 수도 없는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버마와 태국을 잇는 이른바 ‘죽음의 철도’ 공사장에 끌려가 죽었습니다. 영국화폐도 쓰지 못하고 일본의 군사지폐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 모든 버마인들은 한푼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웅산 장군에겐 또다른 위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점령 이전에 아웅산에게 체포령을 내렸던 영국 공무원들은 그를 체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또한 버마 전 지역을 예전처럼 총독의 통치하에 두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버마 국민들은 놀랐고, 아웅산 장군은 자신의 비밀조직인 반파시스트 연맹을 공개했습니다. 이른바 ‘반파시스트국민자유연맹(AFPFL)’. 국민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비밀조직은 무기와 탄약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버마 국민들에 대한 심각한 상황을 안 영국은, 아웅산의 설득과 정치적인 진통 끝에 마침내 1947년 1월27일 합의서에 서명하게 됩니다. 버마 독립을 약속하는. 하지만 아웅산 장군은 7월19일 정적의 손에 의해 암살당하게 됩니다. 우쏘(독립 직후 사형에 처해짐)의 명령을 받은 3명의 부하들에 의해서 아웅산과 그의 각료들 전원은 내각의 회의실에서 참혹하게 암살당했습니다. 독립을 눈앞에 둔 채.

이 사건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영국이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었지만 영국은 약속을 지키는 ‘고귀한 행동’을 즉각 취했습니다. 이것으로 버마 국민들에게,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보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1948년 1월4일. 버마는 영국연방에서 벗어나 독립된 주권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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