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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단일민족사상박성호 / 동덕여대 교수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단일 민족으로 있어 왔다. 한국인의 강한 동질성과 동질의식은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라는 사고를 조장하여 이질적인 것에 대한 배타성과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비관용성을 키워 왔다.

한국인의 순혈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2007년 8월 10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이 단일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현대 한국 사회의 다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라.”라고 권고하였다.

여러 연구(황정미외 3인, 2007, 한국사회의 다민족․다문화지향성에 대한 조사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태한, 2001, 한국 대학생의 인종·민족 선호도에 관하여, 당대비평 14호; 김상학. 2004, 소수자집단에 대한 태도와 사회적 거리감, 사회연구  5권 제1호, 한국사회조사연구소 등)에 의하면 다문화 국가로 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인은 아직도 혈통주의를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단일민족성향은 다문화사회에 진입중인 한국에 장애가 되고 있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국조(國祖)로서 역사적 흥망성쇠가 거듭되는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위난극복의 구심점으로 작용하였다. 이승휴나 일연이 살았던 시대는 몽골의 침략과 이에 맞서 항거, 항복, 압제기 등을 거치는 상황이었고 이때에 단군에 관한 인식이 역사서에 등장하였다.

단군이 본격적으로 민족주체성과 관련되어지면서 체계적으로 해석 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한국은 근대 민족국가를 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인의 단결과 그 우위성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나철(羅喆)은 1909년,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 이후 700년간 단절되었던 국조 단군을 숭앙하는 단군교를 창시하였다.

신채호에 의해 성립된 민족주의 사학과 일제하의 국학은 단군의 자손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밝혀내고 그 의미를 구체화시키는 것을 중심과제의 하나로 삼았다. 정인보는 조선의 오천년의 얼을 언급하면서, 얼이 바로 한민족의 주체성이라 보면서, 그 근원을 단군에서 찾고 있다. 최남선은 불함문화권의 중심이 조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단군이 세운 조선은 다문화국가이다. 오랜 기간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해 온 단군신화는 결코 단일민족을 강조한 신화가 아니며 단일민족의식이 강화된 것은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잠시의 기간’에 불과하다. 오히려 고조선은 다문화 국가였으며 개방성과 조화의 정신을 통해 다문화적 특성을 뚜렷이 하고 있다. 단군신화는 다문화 사회로서 다문화사회가 갖추어야 할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조선은 각 문화집단 간의 고유문화를 융합하여 우세부족이 주도하여 소수문화집단에게 행하는 불평등의 요인을 제거하였다.

천계 부족과 곰 부족의 융합은 물론 범 부족문화와의 상생과정을 보면 개체와 공동체가 분리되는 않는 공동체적 지향 속에서 사회적 존재들 간의 적극적 참여 속에 조화로운 사회와 이상적 공동체를 건설함에 있다.

단군신화를 통해 다문화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타문화간의 결합과 이로 인한 모범적인 다문화사회의 구성원리을 발견할 수 있다.

환웅이 인간이 되기를 열망한 것은 물론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위해서였다. 이러한 단군신화의 정신은 선진 다문화국가들의 실패를 보완해 줄 수 있다.

단군신화는 인간을 중심으로 보는 사상으로 이민족에 대한 시선을 따스하게 하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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