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국제외교학과 3학년인 뭉섬(왼쪽사진)과 8학년인 씨엔룬.

저희 공동체에서 제가 눈여겨보는 학생이 둘 있습니다. 뭉섬과 씨엔룬입니다. 뭉섬은 다공대학교(Dagon University) 3학년생으로 국제외교학을 공부하는 남학생입니다. 씨엔룬은 이제 8학년생(한국의 중3에 해당) 여학생입니다.

여긴 중등과정이 4년, 고등과정이 2년이어서 11학년을 마치면 대학을 갑니다. 말레이시아도 그렇지만, 총 학년으로 따지고 우리보다 1년이 짧아, 어쨌든 학교제도가 좀 이상합니다.

여기 학생들은 대개가 가난한 북부 아이들입니다. 아빠없는 아이들이 절반이 넘습니다. 부모가 있어도 본지가 5년 이상, 10년이 넘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 오갈 수도 없고 고향도 너무 멉니다.

그래서 스탭들은 밝게 키우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해선 엄격합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은 교육밖엔 없습니다. 우리도 가난한 시절 우리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 이제 체스를 안하고 동양의 바둑을 배운다. 근데 틈나면 알까기만 한다.

아이들은 영어는 잘 합니다. 스텝들이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학, 수학성적이 떨어져 지난 주부터는 매주 토요일 학교 선생님을 어렵게 모셔다 과외(?)를 시킵니다. 10학년 아이들 8명이 대상입니다.

이렇게 성의를 다하니까 아이들도 낑낑거리며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올해도 다섯명 중 세명이 대학을 갔습니다. 의대, 공대, 신학대 이렇게. 2명은 기술을 배울 예정입니다.

뭉섬과 씨엔룬. 두 학생을 눈여겨 보는 까닭은 두 학생은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를 가장 잘 합니다. 질문이 많습니다. 뭉섬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가서 더 공부해서 국제기구나 양국 대사관 같은 데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씨엔룬은 아직은 어리지만 한국으로 대학을 가서 요리를 배우고 싶어합니다. 한국에도 인기있는 셰프,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말합니다. 공부하고 돌아와 양곤에 있는 호텔의 요리사로 일하는 꿈이 있습니다.

그때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애가 물어옵니다. 그래, 요즘 아주 큰 호텔들 많이 짓고 있더라. 나중에 거긴 한국사람이 많을 거야. 제가 대답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으레 두 학생이 제 곁으로 슬그머니 옵니다. 며칠전엔 셋이서 자기가 공부할 수 있는 한국의 대학교와 학과를 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국제외교학과와 요리학과. 저도 잘 모르는 분야입니다.

▲ 10학년 시작법 교과서에 나오는 첫번째 시. 국어와 별도로 공부한다.

선생님도 잘 모르는데 나중에 어떻게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저희들은 장학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시던데요.

고심 끝에 제가 겪은 얘기를 해줍니다. “목사님도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했잖아. 한국말 몰라서 영어 프로그램 있는 대학교에 장학금 지원받고. 두드리면 열려. 내가 실제 겪은 일이야. 내가 회사할 때, 일 잘하는 한 여직원이 있었어. 사회복지를 더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사표를 냈어. 일 잘하는 직원이라 붙들었지. 그래도 1년 영어공부해서 간다고. 단호했어. 그래서 내가 모아둔 돈 미국 가서 쓰지말고 노르웨이로 가라고 했어. 사회복지 하면 스칸디나비아 아니냐. 그러니 그 직원이 ‘그나라 말도 모르는데 어떻게 갑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요.’라고 해. 그래서 거기  영어 프로그램 있고 장학제도 있는 대학원 찾아서 전공학과장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봐. 한번 안되면 계속 써.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너희들 같으면 어떡허겠냐?”

저 같으면 받아주겠어요. 불쌍하잖아요. 뭉섬이 대답합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열성에 감동이 되어서 받아주는거지. 그래서 정말 갔어. 동양의 쬐그만 나라, 한국 학생은 첨이래. 시간은 좀 걸렸지만 오슬로 가기전에 고맙다고 밥도 샀어. 너희들은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데 무슨 걱정이냐? 너희들은 영어하고 한국어 두가지로 편지를 써. 그때는 내가 편지내용을 도와줄게.”

이렇게 하여 두 학생의 아주 특별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얼마전부터 뭉섬에게는 바둑을 가르칩니다. 여기 아이들은 다 체스를 합니다. 그래서 서양의 체스말고 동양의 바둑을 배우라고 했더니 이 나라엔 바둑판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녀도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지난 번 한국갔다 오면서 그 무거운 바둑판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아직은 15점을 놓고도 382집을 지는 수준입니다. 바둑판의 칸이 총 381인데 그렇게도 질 수 있다는 걸 처음 겪어봅니다. 다른 애들은 바둑이 어려우니까 알까기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둡니다. 하지만 뭉섬은 열심히 배웁니다. 한국사람이 두는 게임이니까요.

씨엔룬에게는 한국사람들이 잘 아는 시를 가르쳐줍니다. 오늘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입니다. 시를 설명해주니 ‘하나님’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귀절 때문이겠지요. 씨엔룬은 아빠가 없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양곤으로 돌아오리라는.

먼훗날 우리는 양곤의 ‘아주 큰 호텔’에서 씨엔룬이 만드는 ‘유학파 한식’을 먹게 될 수 있을까요?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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