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청구권 소멸...사인간 청구권 소멸되지 않아

▲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강민수 기자] 대법원은 30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소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대법정에서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에서 “대일 청구권 협상으로 국가간 청구권은 소멸됐지만 사인(私人) 간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지난 2005년 국내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한지 13년만에 최종 결론을 내렸고,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논란이 됐던 재판인 동시에 앞으로 한일관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재판이다.

이미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에 향후 파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13년만에 얻은 배상 판결, 그 속내 들여다보면

세간에서는 13년 만에 얻은 배상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故 여운택씨를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은 눈물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41~43년 옛 일본제철 회유로 일본으로 건너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1997년 12월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미지불 임금 등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재판부는 신일본제철은 일본제철을 승계하지 않았고, 여씨 등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소멸됐다면서 원고 패소 확정을 내렸다.

일본 소송에서 패배한 이들은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신일본제철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된 바 있다.

하지만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가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파기환송했다. 이에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3년 “신일본제철이 1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받은 신일본제철은 판결에 불복해 2013년 8월 재상고를 했지만 5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과 연루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법원 자체 조사 결과 양승태 사법부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외교적 마찰 소지가 있는 강제징용 재판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운데)와 관계자들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으로 행진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악화되는 한일관계

이날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로서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배상판결까지 겹치면서 한일관계 설정에 있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1965년 체결한 대일청구권 협상은 사실상 효력 잃어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1965년 박정희 정권 당시 체결한 대일청구권 협상은 사실상 효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이날 판결의 핵심은 대일청구권의 국가간 청구권은 소멸됐지만 사인(私人)간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 재판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 패소 판결을 내린 이유는 대일청구권 협상 때문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청구권 협정을 맺은 뒤 피징용자 사망자·부상자·생존자 피해보상 명목으로 3억 달러를 받았다.

이에 일본은 이미 피해 보상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피해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논리를 그동안 이어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서 사인 간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소송 길이 열리게 됐다.

또한 이는 북한과 일본의 수교 과정에서 배상책임 문제 논의 때 참고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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