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직 90%는 여성...고위직 승진은 ‘그림의 떡’

▲ 서울에 소재한 한 시중은행 창구. 상기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신한, 우리, KEB하나, KB국민 등 국내은행에서 근무하는 여성 은행원은 여전히 높은 유리천장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실시 등으로 인해 여성의 고위직 승진이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4대 은행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은행권 직급별 여성 비율 현황’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4대 시중은행 직원의 여성 비율은 최소 43.7%에서 최대 58.0%를 차지했다.

통계 수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급별로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관리자급 이상 고위직에서 여성의 비율이 낮은 반면 하위직군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관리자급 비중은 한 자리 숫자에 그쳐

우리은행 부지점장 중 여성 비율은 25.8%를 기록했고, 나머지 3개 은행 역시 13.6~17.4%로 낮은 수치를 보였다. 지점장은 아예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진다.

본부장(상무) 중에는 신한은행이 53명 중 4명으로 11.3%를 기록해 나머지 3개 은행과 비교하면 그나마 많은 편이었다.

4대 은행 부행장(전무) 72명 중에는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에서 각 1명이 여성일 뿐 모두 남성이었다.

하지만 대리와 행원 등 하위직급으로 내려가면 여성 비율은 최소 47.3%에서 최고 70.1%를 기록했다.

이른바 2등 정규직으로 불리는 하위직군에서는 최소 94.4%에서 최고 99.2%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등 정규직이란 고용형태는 정규직이지만, 일반 정규직과 차별을 두고 있는 정규직을 말한다. 은행마다 RS직군(신한), 개인금융서비스군(우리), LO직군(국민), 행원B(하나) 등으로 불린다.

일반 정규직에 비해 임금은 60~80% 수준이고 별도의 승진체계를 갖고, 단순직무 위주의 업무를 하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이들 은행의 2등 정규직은 일반 정규직에 비해 대부분 근속연수가 길지만 연봉은 훨씬 낮다.

신한은행의 RS직군의 평균 근속연수는 7.2년으로 일반직(7.1년)에 비해 길었지만 평균연봉은 3700만원으로 일반직(6900만원)의 53.6%에 그쳤다.

KEB하나은행의 하위직군인 행원B의 평균 근속연수는 11.8년으로 일반직(9.5년)에 비해 2.3년 길었지만 연봉은 4400만원으로 일반직(5800만원)의 75.9%였다.

우리은행의 개인금융서비스군의 평균 근속연수는 9.1년으로 일반직(6.9년) 보다 2.2년 길었지만 연봉은 4900만원으로 일반직(5900만원)의 83.1%였다.

KB국민은행의 LO직군은 평균 근속연수는 일반직(9년) 보다 1년 짧은 데 비해, 연봉은 4100만원으로 일반직(6800만원)의 60.3%에 머물렀다.

채용, 일반정규직은 남성...하위직은 여성 위주

이런 상황에서 은행권 채용이 일반정규직은 남성 중심으로, 하위직군은 여성 중심으로 성차별 채용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이후 최근까지 직급별 신규 채용 성비를 살펴보면 일반 정규직에서 여성 비율은 23.2~38.8% 정도인 반면 2등 정규직은 75.9~98.1%의 수치를 보였다.

게다가 하위직군은 일반 정규직과 별도의 승진 체계를 관리하면서 채용, 연봉 등에 이어 승진까지 차별을 받고 있다.

올해 3월 IBK기업은행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2등 정규직의 승진체계를 일반 정규직과 동일하게 통합하는 개선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계장 → 대리 → 과장의 3단계로 제한돼 있던 2등 정규직의 승진체계를 일반직과 동일하게 통합하여 팀장, 지점장, 본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 중 기업은행과 같은 승진체계 통합을 추진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점포가 사라지면서 일반정규직은 남성을 많이 채용하려고 한다. 또한 점포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점포는 유지되고 있고, 창구에서 대민 서비스는 주로 여성들이 담당해 오고 있기에 2등 정규직으로 여성들을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의원은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는데 은행권의 2등 정규직 문제는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한다’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정신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에 만연한 고용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실태조사와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