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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20) 아웅산 묘역에서··· 영혼을 담은 대지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양곤 아웅산 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앞에서 젊은 한국인이 참배하고 있다.

아웅산 국립묘지입니다. 작년 현충일날,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가 세워진 곳입니다. 사건의 그날처럼 오늘도 가랑비가 옷깃을 적십니다. 희고 자잘한 꽃들이 애잔하게 핀 묘역은 고요하고, 한국에서 온 한 청년이 머리 숙여 참배를 합니다.

▲ 양곤 아웅산 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입구 석판에 쓴 한 귀절이 마음을 울립니다. <추모비 문자가 적혀 있는 벽 사이의 틈은 정확히 사건현장을 가리키고, 우리는 그곳을 통해 고인들을 기리며, 그 의미를 가슴속에 간직한다>.

1983년 10월 9일 한글날. 오전 10시 28분. 대한민국 대통령의 차가 묘역과 약 1500미터 남겨둔 거리를 지나갈 때. 귀를 찢는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10시 30분으로 예정된 참배시간보다 몇분 빠른 시간에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사건은 발생했습니다.

당시의 증언입니다. “우리 대통령과 각료들, 수행원과 수행기자들은 비동맹국과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서남아시아를 순방중이었다. 그날 영빈관에 머물던 대통령이 출발시간에 맞춰 내려왔는데 안내하기로 한 버마 외무장관이 도착하지 않아, 화가 난 대통령이 안으로 들어갔고 외무장관이 도착했지만 몇분 더 기다리게 했다.

▲ 추모비 제막을 설명하는 입구현판.

그 사이 이계철 주 버마대사가 먼저 영빈관을 나와, 태극기를 앞에 단 승용차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묘소 앞에 도착했다. 그때 각료들과 수행원들은 이미 도열한 상태이므로 멀리서 보면 이대사가 대통령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얼마후 버마 의장대의 진혼 나팔소리가 짧게 한소절 울렸다가 그쳤다. 수행원과 기자들은 의장대가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폭음이 터졌다.”

비명, 카펫을 적시는 낭자한 선혈, 무너져내린 천장, 화약냄새, 자욱한 연기와 먼지로 뒤덮힌 현장. 이들의 시신은 얼굴을 보여주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이날 대한민국 대통령 수행단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버마 요인 7명이 사망하고 3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돌발상황으로 대통령은 살아남았지만 국민들의 신망이 두텁던 많은 각료들을 잃었습니다.

북한 테러범 3인은 인민무력부 산하 특수8군단 특공부대원들로 무역선으로 테러 한달 전에 양곤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 대사관 참사 집에 머물며 묘역을 지키는 경비병을 피하여 깊은 밤에 잠입하여 폭발물을 설치했습니다. 사건 이틀전까지 3개의 폭탄을 설치했고 그중 1개가 폭발했다고 합니다.

테러범 3인 중 1명은 현장에서 추격중 사살되었고, 1명은 이듬해 사형이 집행되었고, 유일하게 생존했던 1명은 인세인 감옥에서 25년간 무기수로 복역중 중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는 53세였다고 합니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입니다. 아웅산의 혼이 묻혀있는 이 성역에서 자행된 폭파사건이기에 미얀마 정부가 북한에 갖는 원망과 감정은 남다릅니다. 미얀마 국민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단절된 북한과의 외교관계도 다시 회복되었지만 이 묘역은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30년만인 지난 2013년에야 개방했습니다.

▲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부장이 끝에 보인다. 추모비엔 없지만 이 기자를 구하려던 연합통신 최금영 기자는 당시 중상을 입고 부상 후유증으로 2003년 세상을 떠났다.

묘역에 적힌 희생자들의 이름을 봅니다. 맨 마지막에 있는 이름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부장. 수행한 기자 중 유일하게 희생되었지만 14명의 중상자 중에는 8명이 기자들이었습니다. 손과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고도 현장소식을 전한 이도 있습니다. 이중 연합통신 최금영 기자는 이때 중상을 입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 200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금영 기자는 그날, 촬영각도와 거리를 미리 재기 위해 수행원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이중현 기자와 같이 있었습니다. 셔터를 누른 몇초 후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파편에 맞아 부서진 그의 카메라는 한국으로 왔고, 그 안에서 피묻은 필름을 현상하니 딱 한장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참사 몇초 전 정면을 바라보며 서있던 각료들의 모습. 그 모습이 마지막 모습을 담은 유일한 사진이 되었습니다.

▲ 아웅산 묘역 길 건너편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 양곤을 상징하며 국내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그해 가을이 생각납니다. 저는 고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희생자들의 미망인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1년차 신입기자이기 전에 만나면 질문을 던질 수가 없습니다. 갑작스런 아픔을 감당못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일을 앞으로 평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자라는 직업에 처음으로 회의가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고 이범석 장관의 둘째 딸이 한 말이 지금도 가슴에 사무칩니다.

“하나님이 17년 동안 저에게 좋은 아버지를 주신 것으로 감사할 수 있어요.”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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