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연예·스포츠 문화·연예·스포츠
[서평] 하나후다(花札)가 화투(花鬪)가 된 이야기
   
 

[뉴스워치=벡운악 기자]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인 ‘미스터 선샤인’을 보다보면 상류층 부인들이 화투를 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화투는 일본에서 건너온 하나후다에서 유래 됐고 누구나 어렸을 적 화투와 관련한 추억 하나씩은 갖고 있을 만큼 한국에서 유행한 놀이이다.

그러나 한때 국민오락이라 불리며 각 가정에서 즐기던 화투는 실제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이제 13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 국민사이에 널리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동덕여자대학교 박성호 교수가 지은 ‘화투, 꽃들의 전쟁’(세창출판사)은 “조선의 신문에서는 고관들이 심심치 않게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화투판을 벌이고 그로 인해 가산을 탕진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화투를 엄하게 금했다는 기사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화투는 그다지 엄격하게 금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망의 위기 속에서 노름을 감시, 감독해야 할 고위층들이 먼저 나서서 화투 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개의 글을 더 소개해본다.

화투놀이에 빠져 사는 것은 정치의 최고 중심자인 총리대신도 마찬가지였다. 국권찬탈이라는 최악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총리대신 이완용, 중추원 고문 이지용을 비롯한 대신들은 회합을 위해 주연을 열었고 거기에는 화투판도 빠지지 않았다.

1910년 4월 16일에는 ‘総理大臣李完用氏가 牽引症이 深刻하다함은 旣報하엿거니와 苦痛을 忘却키 爲 하야 門客으로 더불어 花鬪碁局에 着心한다더라’라며 총리대신 이완용 씨가 견인증(牽引症, 근육이 쑤시고 아픈 병)이 심각해 고통을 잊기 위해 문객들과 화투를 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이전에도 이완용의 집, 산정에서 화투판을 벌린 다는 기사가 보도됐다.(153페이지)

화투는 청국과 일본, 러시아라는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국권 상실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이하던 구한말, 고위 관료들의 타락과 무책임 속에서 유희문화로서가 아닌 도박으로 조선 사회에 유입되어 백성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161페이지)

이 책은 화투의 유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화투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는 화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0p. 일본의 화투, 하나후다(花札)는 와카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시를 조개나 종이에 그려 넣어 짝을 맞추던 헤이안시대 귀족들의 전통적인 짝맞추기(合わせ) 놀이와 서구 카드가 만나 탄생했다.

유럽인들이 향신료, 도자기, 은, 직물 등을 구하기 위해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해 가던 1543년, 포르투갈 상선의 규슈 다네가시마(種子島) 표류는 다양한 서양 물품들이 일본에 유입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트럼프’와 유사한 ‘카드’도 그중 하나다.

42p. 막부의 눈을 피하려고 일본의 우타(歌)라는 고전시문학과 일본화의 주 소재인 꽃과 새, 자연물, 즉 화조풍월의 세계를 합쳐 만든 것이 하나카르타(花カルタ)라는 견해가 많지만, 현존하는 하나후다의 모습과 비교해 보거나 당시 하나후다의 가격이 고가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관련성은 희박해 보인다.

67p. 이를 반증하듯 초대 총리대신으로 최고의 권력자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명해 만든 ‘총리대신의 카르타’에는 에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48장의 화투 중 12장에 일본 전통시 와카가 삽입된 형태로 제작됐다. 이토가 청일전쟁 전후처리를 위해 1898년, 우리나라 고종을 알현하고 많은 친일파와 교류를 했을 때도 하나후다를 선물로 건네주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71p. 오늘날 세계적인 게임기 업체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일본의 닌텐도는 원래 교토에서 화나후다를 제조, 판매하던 ‘닌텐도골패’(현재의 닌텐도)사로부터 시작된 회사이다.

1886년 골패의 제작, 판매가 합법화된 것을 계기로 공예가로 이름이 높은 야마우치 후사지로(山?房治?)는 1889년 닌텐도의 전신인 야마우치후사지로상점을 교토에 설립해 하나후다를 비롯해 백인일수 등을 판매했다.

102p. 한국 화투에서 12월 패가 일본에서는 11월 패다. 도입 초기의 화투가 남아 있지 않고 구한말의 화투에 관한 기록도 월령가 형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11월과 12월 패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도 11월의 패는 하나후다 연구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이다. 이 도안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소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비, 버드나무, 개구리, 오노노도후 그 어느 것도 11월의 소재들은 아니다.

143p. 한국의 화투와 일본의 하나후다 그림에는 몇 개의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화투 20짜리 패에 광(光)이라는 글자를 넣는다는 것이다.

이 ‘光’자의 의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일본의 대표적인 하나후다 놀이 코이코이(コイコイ)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본다.

화투의 원조 격인 일본의 하나후다는 등장 초기부터 그다지 높은 도박성을 띠고 있지 않았고 이러한 경향은 메이지시대에도 비슷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본의 화투, 하나후다는 한자 발음인 화찰이 아닌 화투라는 이름으로 사용됐다. 화투는 이 땅에 들어오면서 투전의 대용품, 즉 도박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화투의 불행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하나후다는 한국에 들어와 여러모로 변형을 겪게 된다. 그동안 화투의 그림에도, 순서에도, 놀이방법에도 무시 못 할 변화들이 있었다.

또한 화투는 다양한 한국의 사정을 담은 여러 명칭의 고스톱 등 다양한 게임규칙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화투는 한국에서 새로운 놀이가 됐다. 놀이를 하나의 문화현상이라 볼 때, 저자는 화투는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나 한국에서 재해석돼 유행한 한국의 문화라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오락이라 무시됐던 화투에 감추어진 진실을 말하고 있다. 또 오랜 기간 이 땅의 국민들과 함께 하였던 화투를 이제 한국의 문화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백운악 기자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백운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