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가담 여부가 판결의 핵심으로

▲ 정의의 여신상./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강민수 기자] 모르는 사람에게 통장을 함부로 빌려줬다가 보이스피싱 사건에 휘말린다면 처벌은 면하더라도 거액의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27일 수원지법 제3민사부(양경승 부장판사)는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 김모씨가 통장 명의 대여자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가정주부인 A씨는 지난 2016년 10월 스팸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세금 회피를 위해 판매대금을 입금 받아 회사에 전달해 줄 사람을 모집. 수고비로 하루 200만원 지급’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돈이 필요한 A씨는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보이스피싱에 연루됐고, 자금 인출책 B씨가 수사기관에 붙잡히면서 단순 통장 대여자인 A씨는 참고인 조사만 받고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 김씨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통장을 대여한 A씨에게도 불법 공동행위자로서 피해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이유이다.

재판부는 “계좌를 빌려줄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이라면 예상할 수 있었고 입금된 돈을 직접 출금해 인출책인 B씨에게 전달한 정황이 있다”면서 A씨를 공동 불법행위자로 판단,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미 지난 2014년 12월 보이스피싱 사기 관련 손해배상 판결에서 통장을 단순 대여한 보이스피싱 사기 연루자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 사건은 대법원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대여자의 미필적 고의가 있느냐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여자의 사건 가담 정도와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미필적 고의라는 것은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행위가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의식을 말한다.

자신의 통장을 다른 사람에게 대여를 해준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행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가정주부 A씨는 단순히 통장 대여를 해준 것뿐만 아니라 입금된 돈을 인출해서 인출책 B씨에게 전달한 정황이 있기 때문에 사건 가담 정도가 상당히 높다할 수 있다.

실제로 가정주부 A씨가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세금 회피를 위해 판매대금을 입금 받아 회사에 전달해 줄 사람을 모집'이라고 돼 있다. 단순히 통장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범죄 자금을 전달해주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자메시지만 보더라도 A씨가 범죄행위에 가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A씨는 자신이 통장을 대여하는 행위가 범죄행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에 따라 범죄 가담 행위를 했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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