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이 성적 자기결정권 명확히 침해해야 성폭행으로 인정

▲ 수행 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무죄를 선고 받았다./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강민수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4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를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의자의 물리적인 강제력이 보이지 않는 사건이라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유무죄 선고의 핵심은 ‘위력(威力)’이라는 것이 피해자의 ‘성(性)적 자기결정권’을 명확하게 침해하느냐 여부다.

이 위력이 ‘유형’과 ‘무형’ 등 어떤 형태를 띄는지는 관계가 없다. 다만 그 위력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명확하게 침해되는지 여부이다.

과거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부녀의 정조’였지만 오늘날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뀌었다. 강간이라는 것은 물리력을 동원해서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서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위력에 의한 간음 역시 마찬가지다. 대신 물리력이 아닌 계급 등의 무형적인 요소가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이뤄질 경우에 해당된다.

그런 점을 볼 때 이번 사건에서 충남지사라는 직책이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의 직책이며 그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박탈됐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재판부는 충남지사라는 직책이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의 직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안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평소에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이 완전히 박탈 당해서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피해자는 안 전 지사에게 충분히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여성계에서는 피해자의 입을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앞으로 미투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감정과 법적 감정은 다르다. 법은 한 사람의 억울함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충남지사라는 직책으로 상대방을 제압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만 법적 판단은 다르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환경을 만들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이다.

물론 피해자는 항소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이 문제가 다시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항소법원과 대법원에서 위력의 정의를 어떤 식으로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에 따라 이번 재판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 미투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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