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곳

▲ 사진출처=익산 응급실 CCTV 화면 캡처

[뉴스워치] 국민과 의사협회가 공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일 발생한 익산 응급실 의사 폭행 사건을 두고 경찰은 5일, 가해자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가해자인 A씨는 지난 1일 오후 9시 30분께 익산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B(37)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A씨는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분을 이기지 못한 A씨는 피를 흘리고 있는 B씨에게 ‘죽이겠다. 교도소 다녀와서 보자’는 등 협박을 하기까지 했다.

A씨는 술이 깬 후 경찰 조사에서야 B씨에게 사과를 전했다. “진통제를 놔 달라고 요구했는데 의사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의사가 비웃는 것 같아 때렸다”는 폭행 사유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피해자인 응급실 의사 B씨는 선처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밝힌 상태다.

여기에 더해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의사협회까지 나서 성명서를 내는 등 엄중 처벌을 요구하며 어느 때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가해자는 응급실 의사를 폭행한 이유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지만 피해자가 입은 부상의 정도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심각한 상태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의료인에 대한 폭행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알려진다. 지난 2015년 의협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의사의 96.5%가 환자ㆍ보호자 등으로부터 폭력 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의사 외 의료종사자들 역시 지난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사회건강연구소, 서울대 여성학협공과정 김향수 박사과정 등이 전국 다양한 병원과 직업군을 조사한 결과 병원 노동자 60%이상이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욕설이나 폭언 등 언어 폭력을 경험했다. 이번 사건처럼 신체적 위협이나 폭행 등을 경험한 비율은 27.7%에 달한다.

의사 폭행, 환자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행위

무엇보다 이번 응급실 폭행사건은 한시바삐 치료가 필요한 위급한 환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사들이 해당 병원을 찾는 다른 환자들을 돌볼 시간과 기회까지 빼앗는 꼴이라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 오죽하면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을까.

그러나 법적 처벌을 차치하고라도 의사 개인의 심경을 생각해보면 작금의 사태, 의료종사자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는 처참할 지경이다.

응급의학과 선봉자로 불리는 이국종 교수부터 지방병원 응급실 담당의까지, 치료의 경중이 다를 뿐 누구나 위급한 환자를 위해 밤을 지새운다. 의사가 존경받는 시절까진 아니더라도 의사가 본인의 책무에 헌신하고 이를 통해 자부심을 느끼는 환경이어야 마땅한 셈이다.

글 잘 쓰는 의사 남궁인이 응급의학과 담당의로서 보고 듣고 느끼며 써 내려간 ‘지독한 하루’를 이 사건과 비교해 본다면 그 처절함은, 폭행의 위험성은 더욱 더 피부로 와닿게 될 것이다.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사람좋은 얼굴로 눙을 치던 남궁인은 매일 크고 작은 죽음을 맞이해왔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이만이 쓸 수 있는 ‘만약은 없다’에 이어 지난해 ‘지독한 하루’를 세상에 내놓기에 이른다.

막연히 상상했던 TV 속 의학다큐, 응급실 24시간 같은 이미지는 드라마틱할 뿐이다. 책은 첫장부터 책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의사로서 다양한 상황의 환자를 마주하고 치료하고 좌절하거나 희망하는 등 참담하고 숨쉬기 힘든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3자의 시선이 아닌 담당의의 시선으로, 마음으로 써내려간 응급실, 도저히 그 순간을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장면들이 줄을 잇는다.

무엇보다 현직 의사인 남궁인은 이같은 사안들을 철저히 의학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마음들을 간결한 문장으로 진실되게 전하고 있어 더욱 격렬하게 독자의 마음을 후벼 파고 들어간다.

거창한 의학적 용어 없이도 설명해 나가는 응급실 환자의 상태들은 너무도 생생해 눈앞에 고스란히 그려진다.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 속에 숨막힐 듯한 죽음의 현실이 독자들을 덮친다. 그 안에서 남궁인은 영민하게도 세상의 현안들까지 차곡차곡 담아냈다.

아동학대부터 병원 인턴의 생활, 교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임상강사의 처지, 119 대원들의 고충, 중증외상센터의 현실까지 그간 드라마나 다큐 등에서 다뤄졌던 주제들을 총집합시켜놓고 조곤조곤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픽션 아닌 의사들의 하루하루, 들여다본다면

남궁인이 ‘지독한 하루’에 담아낸 모든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다큐멘터리나 딱딱한 회고록, 혹은 신파를 떠올려선 안된다.

책 안에는 그보다 상위, 인간에 대한 연민, 말로만 들어선 결코 느끼지 못할 생명의 소중함, 의사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충 등 3시간 짜리 영화 상영 종료 10분 전에나 느낄 수 있는 클라이맥스들이 책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에 모두 담겨 있다.

특히 작가란 직업만 가지고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현장의 숨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독자들의 공감대를 높인다.

환자나 보호자가 아닌 의사는 제 3자이지만 결코 3자일 수 없는 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처음 만난 환자의 생사에 관여하는 이 젊은 의사는 생을 붙잡고, 생을 놓치는 그 모든 순간을 후회하고 곱씹는다.

더불어 그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만나지 않고 살이있음이, 평화로운 하루가 감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남궁인은 글 쓰는 의사라는 점에서는 보통 의사보다 특별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환자들을 대하고 느끼고 눈물 흘리는 감정들은 결코 다른 의사들과 다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작금의 사태에 더욱 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목숨을 살리기 위해 1분 1초가 아깝고 모든 순간들이 괴로운 선택의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 그들의 하루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비난받고 조롱받는다. 이유없는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알코올에 취한 몸으로 진통제를 요구하며 의사가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한 A씨, 어찌됐든 그를 환자로 맞이해 의사로서 책무를 다해야 했을 B씨, 지금 이 순간에도 응급실에서 고무 재질의 슬리퍼를 신고 자신의 몸보단 환자의 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전국의 응급의학과 의사들. 생각할수록 착잡해질 밖에…적어도 생사가 갈리는 병원 안에서는 의사와 그들이 지켜내야 할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만큼은 절대 반복돼선 안될 일이다.

문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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