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엄수 조항에 가려진 갑을 계약 관계에 대해

▲ 아시아나 항공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기내식 공급 차질과 이로 인한 운항 지연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한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기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이 일어난 가운데 협력업체 사장이 지난 2일 자살을 했다. 평소 지인에게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라고 한다.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공급업체 샤프도앤코와 30분 공급 지연하게 되면 음식값을 절반으로 깎는다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협력업체 사장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결국 자살을 한 것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아시아나항공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0분 공급 지연에 음식값을 절반으로 깎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라는 비난이 있다. 물론 공급 지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책임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을 쥐어짜는 형국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관계는 아무래도 갑을 관계이다. 때문에 협력업체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호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협력업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도 하소연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불공정한 계약서에 들어 있는 비밀엄수 조항 때문이다.

물론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 기업과 개인의 계약에 있어서 그 계약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것이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하지만 그 계약이 부당할 경우 하소연을 해야 하는데 계약서 상에 비밀엄수 조항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 그런 협력업체 사장들이 많이 있다.

실제로 대기업 횡포와 관련해서 취재를 하면 대부분 협력업체 관계자는 “비밀엄수 조항 때문에”라면서 말을 하기를 꺼려한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 요구하는 비밀엄수 조항도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그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이런 이유로 협력업체가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가 없다. 이에 협력업체는 불공정거래로 인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관계가 다소 개선됐다고 하지만 계약서 상에 적혀 있는 비밀엄수 조항 때문에 협력업체는 벙어리 냉가슴 앓으면서 아무런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취재에 나선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자신들은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계약서에 있는 비밀엄수 조항 때문에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영상의 이유 때문에 비밀엄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협력업체를 옥죄는 그런 조항이 돼서는 안된다. 협력업체도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열려야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비밀엄수 조항은 대기업의 경영을 위해서 필요한 조항이지만 그 조항이 결국 협력업체를 옥죄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비밀엄수 조항에 대해 이제는 새롭게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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