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영화 '인턴' 예고편 캡처

[뉴스워치] 맞벌이 부부가 많다. 아이는 낳으면 알아서 큰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부부가 숟가락 한 벌만으로 시작해도 성실하게 살면 30년 후 집 한 채 갖는다는 건 부모 세대에서 ‘쫑’났다. 부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맞벌이 중이다.

양육비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2년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녀 1명당 양육비를 추산한 결과, 3억9670만 원에 달했다.

2003년 1억 9702만원, 2009년 2억 6204만원, 2012년 3억 896만원, 그리고 2017년엔 무려 9천여만원이 늘어난 셈이다.

사교육비를 제외하고 자녀 1명당 교육에 들어가는 최소 예산은 대학까지 3800만원 정도. 최소한의 사교육비를 더하면 9천만원이 더해져야 하고, 최고 수준의 공·사교육을 시킬 경우 자녀교육 예산은 최대 3억 1400만원까지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맞벌이 부부의 여건은 공평할까?

비단 양육비 뿐 아니더라도 20~30년을 꼬박 월급만 모아도 서울 시내에 집 한 채 건사하기 힘든 현실이 부부 모두를 근로자 혹은 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일한 만큼 월급을 받는다’는 공평함 속에서 일하는 부부들의 집안 모습은 어떨까?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사 분담은 공평함을 유지하고 있을까?

지난해 통계청 자료가 실상을 알린다. 1999년부터 5년 주기로 실시되는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녀의 시간관리 실태 분석에서 남자의 하루 평균 가사 관리 시간은 19분이다. 반면 여자의 하루 평균 가사 관리 시간은 140분. 무려 7배 차이가 났다.

지난 4월, 중앙 SUNDAY가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서 기혼자를 따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는 더욱 기가 막히다. 직장인 여성은 돌봄(33.4분)과 가사(174.9분)에 하루 평균 208.3분을 썼다.

극단적으로 반대 위치에 선 무직 남성은 돌봄(18.2분)과 가사(54분)에 72.2분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은 주업이 없는 상태에서도 가사와 돌봄 시간이 최소였고, 여성은 일을 하는 상황에서도 가사와 돌봄 시간을 전담하다시피 한 꼴이다.

이 불평등은 대부분 사람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페미니즘 도서로 꼽히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도 사실은 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몸부림을 담아냈다. ‘페미니즘’이란 키워드로 대변되지만 실상은 이 사회의 단면을 조명한 것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젠더로 가둔 창살 속에 갇혀 사는 우리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출생한 가장 흔한 여자 아이 이름인 김지영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 책이다.

작가는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에 담아두고만 살았던 말을 뱉어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남편을 기함하게 만든다.

아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남녀차별, 사회 불평등, 가정 내의 영원한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맘충, 김치녀, 메갈 끝없이 생산되는 여성 비하 신조어들 속에서 ‘82년생 김지영’은 현실 속 여성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비출 뿐이다.

일과 가사, 꿈과 현실 속에서 끝없이 갈등해야 하는 여성들은 심지어 자신의 이름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란 타이틀을 두고도 고민해야 한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결혼 후 시댁 식구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킬 수 밖에 없었던 김지영 씨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으로 꿈과 일을 포기한 김지영이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난 첫 외출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가 맘충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 역시 이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는 세상 속에서 결국 김지영은 미치고 만다. 무려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가장 속시원하고 빠른 해법인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젠더적 혐오를 떠나, 페미니즘을 떠나 여성들이 별다른 선택지 없이 사회의 통념 속에, 희생이라는 창살에 갇혀 살아간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여성의 입장만 대변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성 역시 여성과는 또다른 창살 속에 갇혀 살아갈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이 강요되듯 남자라는 이유로 짊어지는 희생도 만만치 않을 터다. 그러나 알 길이 없다.

남자가 아니므로, 여자가 아니므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남자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른바 ‘80년생 김지훈’이 나와도 여자들의 공감은 크지 않을지 모른다. 오직 여자만이 공감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씁쓸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제쯤 남성과 여성은 젠더의 선을 넘어 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앞서 전한 가사, 돌봄 시간이나마 공평해질까? 그 역시 알 길이 없다.

문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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