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 나쁘기 보다는 민족 분열의 아픔 있을 뿐”

▲ 6일 국립서울현충원 정문을 들어서니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추모 플래카드가 보인다. (사진=이소정 기자)

[뉴스워치=이소정 기자] 6일 낮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모인 참배객들이 정문 입구서부터 국화꽃을 들고 줄을 이었다.

오는 12일에 있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맞이한 현충이기에 이날 현충원을 방문한 참배객들 사이에는 경건함과 함께 평화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수십 년간 남북의 상처인 한국 전쟁의 아픔을 품은 채 이곳을 찾아왔을 참배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 6일 현충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이소정 기자)

곳곳에서 들려오는 남북 훈풍의 목소리

“여기 곳곳에서 정상회담이니 통일이니 얘기들이 많이 들려요.”

묘역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돗자리 장수 이 모(51)씨가 말했다. 오전부터 묘역을 돌며 돗자리를 팔고 있다는 이씨는 사는 게 바빠 최근 남북 정세를 알긴 하지만 자세히는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돗자리 팔면서 돌아다니면서 정상회담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이제는 설명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씨의 뒤편으로는 수많은 참배객이 연신 땀을 훔치며 발걸음을 바삐 옮기고 있었다. 묘역에 들어서자 수많은 참배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를 올리며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 묘역에서 참배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이소정 기자)

묘역 전체에 경건함과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간간이 평화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1972년 경기도 가평에서 순직한 형 김경구 씨를 기리기 위해 매년 가족과 방문한다는 서울 송파구서 온 김종억 씨는 묘역을 바라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민족이지만 어쩔 수 없이 총부리 겨누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말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그 희생을 위해서라도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는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회담을 거쳐 앞으로 강력한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며 “진정한 평화의 약속이 이뤄질 기반이 될 종전 협상을 지지하며, 이를 반대할 대한민국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고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함께 온 아내 박인숙 씨도 “통일은 우리 모든 국민이 다 원하는 것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민군들이 무슨 죄가 있었겠나,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서 전쟁을 한 것이고, 몇몇 위정자들에 의해서 명분 없는 싸움으로 희생을 당한 것이다”라면서 “만약 통일이 된다면 서로가 용서를 해야 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기도 광명시에서 한국 전쟁 참전용사 이기순 씨의 묘에 참배를 온 가족들도 “요즘 분위기야 뭐, 마음이 찡하다”며 소감을 말했다.

이 모씨는 “북한 사람들이 막 나쁘다기보다는 민족이 분열된 것에 대한 아픔이 있을 뿐이다”며 “북한 사람 자체보단 높은 사람들, 일부 지도층의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통일에 대해서도 “됐으면 좋겠다”며 “나라가 커지고, 경제도 열심히 살다 보면 북측 사람들도 근면‧성실하니까 더 살아나지 않겠냐”라며 미소를 보였다.

▲ 6일 오전 제63회 현충식이 끝난 후 시민들이 자리를 뜨고 있다. (사진=이소정 기자)

기대뿐 아니라 우려와 경계도 함께해

다른 묘역에서도 수많은 참배객 사이로 남북 관계와 관련된 대화가 흔치 않게 들려왔다. 또한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우려와 경계도 함께 녹아 있었다.

“또 뒤집힐까 봐 걱정되기는 하지만 이번 회담은 잘돼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을 한 서울 마포구에서 온 황 모(69)씨에게 어떤 점이 우려되는지 묻자 “지금은 어느 정도 심화돼서 북미회담까지 왔지만, 그 이전 상황들을 보면 북한이 핵 폐기를 약속했다 뒤집은 전적이 있다”며 “그래서 조금 염려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사람들은 서로가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이다. 그들로부터 자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며 “앞으로의 회담이나 북핵을 폐기하는 과정에 진정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묘비 앞에 선채 쓰고 온 모자를 손에 쥐고 묵념을 하던 전남 영광군서 온 김 모(68)씨도 비슷한 걱정을 말했다.

1975년, 간첩 섬멸 작전에서 전사한 동생을 위해 매년 이곳을 방문한다는 그는 요즘 북미정상회담 등 남북 분위기에 관해 “하도 서로 트집을 잡으며 잡음이 끊이지 않으니, 나는 잘 모르겠다”며 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없다고 말했다.

▲ 충성 분수대 뒤쪽에 설치된 봉사단체 부스들. (사진=이소정 기자)

묘역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향했다. 방문객들이 빠져나간 티가 나는 충성 분수대 근처 광장을 지나 만남의 집으로 가니, 그곳에는 여러 봉사단체가 천막을 치고 모여 있었다.

그중 한 구역에는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구가 있었다. 20여 년간 해마다 이곳 현충원에서 봉사를 해왔다는 윤정자 씨는 북미정상회담 등 현 남북정세에 대해 “하도 서로 이랬다저랬다 태도를 바꿔서 사람들이 이제는 기대하기를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통일 분위기를 말하는 참배객들도 여럿 눈에 띄지만, ‘대체로 믿을 수 없다’는 게 확실히 보인다는 윤씨는 “사실 나도 확정적으로 통일이 된다 해도 완전히 믿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잘 됐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믿을만한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날 현충원에는 현충식 행사가 끝난 한참 후까지도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발걸음들이 경건한 마음과 함께 이어졌다. 넋을 기리는 점잖은 걸음 하나하나에는 평화의 열기가 섞여들어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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