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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16) 난민일기 #1. 말레이시아 정글속으로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친주 깔리묘서 띠딤으로 가는 버스 타는 풍경

오늘은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입니다. 이런 날을 정했다는 건 세계가 난민으로 큰 진통을 겪는다는 의미이자 모두가 이 문제를 함께 나눠야 할 때라는 뜻이겠지요.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난민,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중동의 난민들. 우리와 가까운 동남아에는 미얀마 난민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미얀마 난민들은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국경 나라인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까지 흩어져 있습니다. 부족들마다 미얀마를 떠나 불법으로 남의 나라에 난민촌을 이루고 사는 불행한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자신의 조국을 떠난 걸까요?

▲ 쿠알라룸푸르 난민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있다

미얀마는 지금은 민선 1기이고 올해 대선을 치루지만 49년간 막강한 군부통치가 국민을 지배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의 종교적 박해, 소수민족이라는 이유의 인종적 탄압,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의 정치적 박해 등. 이것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난민 발생국이 되었습니다.

종교가 다른 북부의 친주(Chin State)와 까친주(Kachin State)에 사는 소수부족들에게 행해진 차별과 박해. 이 지역은 대대로 기독교를 믿는 부족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없어 아이들 교육이 안됩니다. 병원 등의 기초 보건시설이 없습니다.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약탈과 강간사건이 빈번히 일어나고, 게다가 척박한 땅에 기아까지 겹쳤습니다.

▲ 마투삐 지역 아이들의 모습

가난과 차별과 종교적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이웃나라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경지대인 가까운 태국으로, 태국을 거쳐 잘 사는 나라 말레이시아로. 미얀마는 아름다운 안다만해를 끼고 긴 꼬리 같은 해안이 이어집니다. 말레이시아로 가려면 해안 끝에서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생결단을 하고 떠나는 이 탈출의 행로에서 많은 이들이 숨졌습니다.

밀려드는 난민들을 태국에서 봉쇄하기 시작하자 말레이시아로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얀마 북부에서 트럭을 타고 며칠을 온 양곤에서 배를 타고 태국 국경까지 온 다음, 국경에서 조그만 보트로 말레이시아 국경까지 옵니다. 태국 국경에서 트럭이나 승용차로 말레이시아 국경으로 와 철조망을 자르고 정글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정글 속으로 숨어서 며칠을 걸어서 쿠알라룸푸르까지 오면서 배고픔에 병들기까지 했습니다.

▲ 쿠알라룸푸르 난민교회 스탭들

배가 국경을 넘으며 폭풍우를 만나 태국 해안에 비상으로 배를 댔다가 쫒겨나 다시 바다로 나갔다가 150명이 사망했습니다. 강을 통해 가려고 조그만 보트에 나무로 위장해 가다 밤에 아기가 울어 인솔하는 태국인이 버리기도 했습니다. 검문검색을 피해 태국 국경으로 가던 컨테이너가 사고가 나 1백여명이 사망하고, 냉동차에 숨어서 가다 65명이 언 채로 숨져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동에는 ‘태국 마피아’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합니다.

“저는 국경에서 승용차로 왔습니다. 15명이 탔습니다. 앞좌석에 2명, 트렁크에 3명, 뒷좌석에 10명이 탔어요. 숨쉴 수가 없었어요. 말레이시아 정글 속으로 며칠을 굶고 도시로 왔어요. 도시에는 경찰이 수색하고 있으니 할 수 없이 정글에서 열매를 따먹으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유엔의 난민카드를 받은 한사람의 증언입니다.

▲ 친주 마투삐에 외부사람이 와서 저녁 감사 식사가 있었다

또다른 증언입니다. “저는 북부 친주의 민닷(Mindat) 정글에서 태어났어요. 50여 가구가 살았는데 중학교가 30Km나 되어서 아침 7시에 출발하면 오후 4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못가고 14살까지 국경을 넘어 인도 마을로 다니며 장사를 했습니다. 3일 걸려 인도로 가서 쌀과 자전거를 교환하는 장사죠. 그런데 말라리아에 걸려서 3년을 병원도 못가고 쉬었어요.

학교도 없고 진료소도 없었어요. 90년도에 고향마을에 군부대가 들어와 군인들이 주둔했어요. 북부에는 크리스챤들이 많이 살았는데 불교 귀화정책을 펼쳤지요. 젊은 군인들로 인해 문제가 계속 발생했어요. 그들은 우리가 키우던 닭과 돼지들을 잡아먹고, 젊은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가 노역을 시켰습니다. 처녀들을 추행하고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이렇게는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6년도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쿠알라룸푸르 난민교회 KGC에서 목회를 하는 링기 목사(40)의 말입니다.

지금 말레이지아에는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약 30만명의 미얀마 난민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중 유엔의 난민카드를 받은 사람도 있고, 수용소에 있는 사람, 불법체류자도 있습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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