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 대중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을 가장 잘 이용하는 건 아무래도 정치판이다. 정계는 크고 작은 일에 배후설, 조작설 등 음모론을 주창하며 대중을 손에 쥐려 한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1인 헌법기관인 판사의 판결에도 배후설을 주장한다.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했다는 듯한 여지를 남기며 대중의 머리 속에 의문 부호를 새기기에 열중이다. 6.13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정가를 둘러싼 크고 작은 현안에 어김없이 음모론이 등장한다.

왜일까. 첫째, 인간의 호기심 때문일 터다. 자극적인 사안에 음모론이 더해졌을 때 사람들은 진실을 캐내고 싶어 한다.

진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에도 혹여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까 그림자를 헤집는다.

마치 재미난 영화의 런닝타임 동안 엄청난 반전을 상상하며 기대를 부풀리는 것처럼. 둘째, 자극적 스토리가 사람들을 선동하기엔 그만이다. 그간 보여져 왔던 것과 다른, 엄청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소한 정보에도 대중 심리는 쉽게 끓어오른다.

셋째, 경험치가 음모론의 신빙성을 높인다. 음모론처럼 나돌았던 루머들의 극히 일부가 진실로 밝혀졌던 과거 사례를 떠올리며 항간의 음모들이 진실일지도 모를 거라 믿는다.

지난해 한 연예인의 공판으로 인해 법원에 갔다 기함한 적 있다. 법원 로비에서 50~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속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은 나쁜 놈이다”. 가방에 꽂힌 태극기가 태극기 집회 참가자라는 것을 알게 했다. 쏟아지는 열변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가 찼다.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저런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마음을 열기는커녕 귀도 닫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십수 명의 중년들이 그 아주머니 앞에 모여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이래서 허무맹랑한 얘기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하는구나. 가짜뉴스를 괜히 만들어내는 게 아니구나. 가짜뉴스를 인스턴트 메시지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퍼나르는 일부 정치인들의 속내를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진실은 앞서 말했듯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것이다. 배후설, 조작설 등 음모론은 누군가의 목적과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는 ‘설’일 뿐이다. 다만 누군가 작정하고 호도할 경우 음모는 진실보다 더 진실 같아진다는 것이 함정이다.

중국의 한 작가도 음모론이 나오는 이유에 주목했다.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의 톄거(본명 천린쥔)다.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는 세계를 지배하는 비밀조직 프리메이슨, 세계대전을 일으킨 배후세력, 미국 금융을 둘러싼 음모론, 중국 백신에 대한 진실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떠도는 음모론에 대해 다룬다. 서양문화사와 유대문화사를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는 저자는 예리하게 각종 음모론을 파고든다.

특히 톄거는 서양 근대사와 금융발전사를 해석해 중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쑹훙빙의 ‘화폐전쟁’이 표절이라 규정한다.

미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돈의 지배자들’이란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가져다 베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지배자들’에 신빙성은 있을까? 심지어 정반대다. 미 연방준비은행(FRB) 음모론으로 떠돌아 다니는 의혹들의 진실은 대학 교재에 상세히 명시돼 있을 정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엄청난 상상력이 그럴싸한 음모론을 만들어낸 예다.

톄거는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를 통해 세계 주요 음모론들을 이런 식으로 파헤쳐간다. 꽤 신빙성이 있어 ‘이게 사실인가’ 싶은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먼저 소개한다.

그들의 주장에는 무너뜨릴 수 없는 뼈대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해당 음모론의 뒤를 조명할 때 실체가 드러난다. 어떤 음모는 외국 사이트에서 등장하는 것들이 각색돼 옮겨오는 것들이다.

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말미에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후원금이 필요하다”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음모는 작가마저도 믿을 뻔했지만 황당무계한 외계인 연관설로 흘러가기도 한다. 톄거는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0.1%의 가능성을 제외하고 모든 음모론은 이렇듯 목적의식이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자신이 추적하고 파헤친 음모론의 진실을 통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음모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바로 의심이다. 의구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지극히 건강한 사유다. 그러나 의심이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가 된다면 모든 진실은 거짓과 음모로 둔갑한다.

‘나는 의심한다’가 ‘고로 참이다’로 바뀌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같은 맥락에서 음모론 역시 철저히 냉정한 눈으로 의심해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냉정한 의심 뒤에는 분석과 본질을 들여다보는 정성도 필요하다. 대부분 음모론 앞에 대중은 공부와 분석을 뒤로한 채 떠벌리기에 몰두한다. 그걸 아는 음모론 생산자들은 한번만 걷어차보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허술한 얼개로 대중을 유혹한다.

적어도 갖은 이유로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휘둘리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옛 성인들의 말을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 음모론의 안개에 갇힌 대중이 건전한 사유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진실의 그림자를 헤집는 것이 아니라 음모론의 뒤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문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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