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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70년 맞은 '5·10 총선거'의 의미보통·평등·비밀·직접 내용 담은 최초 민주적 선거
   
▲ 10일은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주선거인 제헌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이후 올해로 민주선거 70년이 되는 날이다./사진제공= 연합뉴스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10일은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주선거인 제헌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이후 올해로 7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선거는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가 위한 목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로 ‘5·10 총선거’로 불린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로 해방을 맞이했지만 냉전이 찾아오면서 한반도는 열강의 간섭에 휘둘리게 됐다.

미군은 1945년 8월 13일 한반도 주둔 일본군 무장해제와 소련군의 한반도 전역 점령을 막기 위해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해서 소련에 통고했으며, 소련군은 같은 해 8월 21일 원산에 상륙, 평양에 소련군사령부를 설치했다. 그해 9월 8일에는 미국이 인천항을 경유, 서울에 진주했다.

그해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개국 외상회의를 개최했는데 미국의 제안으로 한반도에서 신탁통치 실시를 결정했으며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합의문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된다.

남한 단독으로 총선거 실시키로

미국과 소련 사이에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면서 결국 1947년 9월 23일 유엔총회 본회의에 채택됐고, 유엔감시 하에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한 총선거 실시 후, 정부수립과 동시에 미소 양군의 동시 철수, 그리고 총선 및 양군 철수 등에 대한 감시협의체로서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을 설치할 것을 제의했다.

그 이후 소련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가운데 그해 10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찬성 43표, 기권 6표로 결의안이 가결됨으로써, 1948년 3월 31일 안에 UN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하에 한국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결의했다.

이듬해 소련이 총선거 실시를 거부 하면서 3월 4일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남조선 총선거 실시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그해 5월 10일 남한만 단독 총선거가 실시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된 5·10 총선거 포스터

보통·평등·비밀·직접 선거

선거권은 만 21세 남녀에게 부여됐고,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에 한정했다. 다만 일본정부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일본제국의회 의원이 됐던 자는 피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이날 선거는 보통·평등·비밀·직접 선거였고, 선거구제는 1선거구에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였다.

선거구는 부(府)·군 및 서울시의 구(區)를 단위로 하고 인구 15만 미만은 1개구, 인구 15만 이상, 25만 미만은 2개구, 인구 25만 이상, 35만 미만은 3개구, 인구 35만 이상, 45만 미만의 부는 4개구로 하여 200개 선거구를 확정했다.

입후보자는 모두 948명

입후보자는 총 948명으로 이승만이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235명, 동아일보 중심의 언론계 출신과 자본가 계급, 그리고 일본 및 미국 등에서 해외 유학을 하고 돌아온 지식인 계층 등이 조직한 보수 우익 정당인 한국민주당이 91명, 대동청년단이 87명, 조선민족청년단이 20명, 대한노동총연맹이 12명,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이 12명의 후보를 각각 냈다.

해방 이후 정당 및 사회단체가 난립되면서 무려 48개가 됐지만 단 1명의 후보를 낸 정당 및 사회단체가 25개나 됐다. 그리고 남북 협상파와 좌익계열은 이 선거에 불참했다.

5·10 총선거 때에는 후보자를 표시할 때 숫자 기호 대신 작대기로 표시를 했다. 그 이유는 당시 문맹률이 높아서 숫자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사진제공=연합뉴스

문맹율 높기에 작대기 선거

이날 실시된 선거의 포스터 혹은 투표용지에는 오늘날 처럼 숫자 ‘기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대기’로 숫자를 표시했다. 그 이유는 문맹률이 높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숫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에 유권자들은 '작대기의 숫자' 혹은 포스터에 있는 사진 등을 보면서 투표를 해야 했다.

또한 3월 29일부터 4월 9일까지 유권자 등록기간이었는데 전체 유권자 79.7%에 해당하는 780만명만 선거인 명부에 등록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유권자 등록을 강요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관련 내용의 당시 신문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또한 총선거 실시 당일에는 수천명의 경찰과 특임된 민간인이 미군 지원 하에 주요 도로 등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선거 경비에 나섰으며,  각 투표소 골목 입구에도 경비대가 배치됐다. 그 이유는 총선거 실시를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총선거 실시는 그해 7월 17일 제헌국회를 완성하게 됐고,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어기선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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