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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인범이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
   
▲ 사진출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쳐

[뉴스워치=강민수 기자] 지난 4월 30일,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진행됐다. 1심에서 주범과 공범은 각각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공범인 박모 양에게 징역 13년형을 선고했다. 무기징역에서 13년, 파격적이기까지 한 감형에 여론은 분개했다.

소년법 적용을 받는 주범 김모 양, 1심과 달리 살인이 아닌 살인방조 혐의로 감형된 박 양. 그들이 저지른 잔혹범죄와 다른 처벌 양상에 여론은 분통을 터뜨린다.

소년법 폐지를 외치고, 사형제 시행을 부르짖는다. 급기야 재판부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비단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뿐 아니다.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 범죄의 강도와 수위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생각될 때 여론은 한 목소리로 사형선고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최선일까? 묻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최선’이란 사형 선고나 사형 시행이 옳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범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가장 합당한 처벌을 말한다.

아마도 현대의 법 제도상으로는 사형이 최대의 형벌일 터다. 허나, 범인이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아 내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구나’ ‘내가 미친놈이었구나’는 생각을 할 지는 의문이다.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치자. 대중이 ‘이제 됐다’하고 마음을 놓을 때, 범인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바로 이 질문을, 돌직구로 날려오는 작품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다. 쉬지 않고 책을 출간하지만 작품의 퀄리티에 있어선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속죄할 줄 모르는 살인범과, 일생 속죄할 길만 찾는 또다른 살인범을 내세우며 사형제도의 타당성과 의미에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

평범한 샐러리맨 나카하라는 아내 사요코와 8살 딸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평온했던 어느 날,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침입한 강도에게 딸을 잃는다.

강도는 이미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무기징역형을 받았지만 모범수로 인정받아 석방된 지 한 달 만에 살인을 저지른다.

심지어 결박된 어린 아이를 죽인 이유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것 때문. 강도의 사형선고를 위해 법정에서 고군분투하던 부부는 모든 법적공방이 끝난 후 이혼에 이른다. 그로부터 11년 후 아내 사요코마저 길거리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사요코는 생전, 사형제도가 꼭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책을 쓰던 중이었다. 그에게 사형제도란 유가족에게 고통을 넘어서는 관문이나 마찬가지다.

위안이나 종착지가 아닌,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인 셈이다. 사요코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유족의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하는 독자도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론이다.

그러나 딸 살해범의 변호사 말이 사요코의 굳건한 주장을 뒤흔든다. 독자들도 흔들어놓는다. 변호사에 따르면 사요코의 딸을 살해한 강도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 항소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섬뜩하다. “이제야 내 운명이 정해졌다” 이미 판결이 났는데 또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살인범은 자기 죄의 경중을 판가름하는 재판과정에서 회개하거나 교화되기는커녕 그저 지쳤을 뿐이었다. 사형이든, 무기징역이든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마저도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한 범인을 두고 유가족은 죽은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해, 재판부는 법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형량을 걸고 싸운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작가는 사요코 죽음 뒤 감춰진 비밀을 통해 살인의 속죄가 비단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혹은 사형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 말한다. 결국 속죄의 본질은 ‘살인자가 어떤 인간인가’에 따라 달렸다는 듯이.

그렇다. ‘공허한 십자가’ 속에는 십자가를 짊어진 두 사람이 있다. 아무런 법적처벌을 받지 않고도 매일매일 속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짊어진 십자가, 그리고 체포돼 법적처벌을 받고 교도소 안에서 교화나 회개란 그물 안에 갇혀 무념무상으로 살아가는 자가 짊어진 십자가. 두 십자가의 무게도, 의미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형제도는 왜 필요한가. 사형제도는 그럼에도 필요한 것인가. 속죄의 방법은 체포와 선고로만 이뤄지는 것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다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말할까 한다. 주범인 김모 양은 항소심 재판 중 이런 말을 했다. 그는 3월 12일 항소심 법정에서 “재판장님, 미성년자에게 사형은 안 되나요”라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흐느꼈다. 또 “며칠 안에 목을 매지 않도록 (저를) 주의해서 관찰해 달라”는가 하면 “너무 죽고 싶지만 나 때문에 슬퍼할 사람이 아직 남아있어 죽을 수가 없다”며 오락가락,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이 진심이었는지, 형량을 줄여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찌됐든 결과 역시 1심과 다르지 않은 20년형이다. 그리고 주범은 1심에 불복했듯 2심 결과에도 불복의 뜻을 밝히며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제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이 시점에서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우리는 범인의 다른 두 얼굴을 보며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우려할 것이 아니라 물어야 할 때다. 사형을 부르짖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에 앞서 김 양이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를 물어야 한다. 김 양이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어떻게 해야 한 생명의 무게로 느껴질 수 있을지부터 물어야 한다.

강민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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