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청한 주말의 토요일,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소박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내년에 있을 브리즈번시장(Lord Mayor) 선거에서 노동당(Labor) 후보로 나선 정치인을 홍보하는 작은 모임이었다.

이 모임의 주선자이며 노동당 후보를 지지하는 타이완 출신의 로컬신문 여기자가 몇 주 전에 초청장 이메일을 보내왔다. 정치판 놀음에 들러리 노릇을 하게 될까봐 망설이다가 노동당이 내세운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도 생겨서 참석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우리 가족은 정치에 꽤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나 중학생이었던 시절, 선거철이 되면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은 정말 요란했다. 용달차라고 불렸던 작은 트럭에 확성기를 설치해서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고, 자신만이 지역구민들을 위한 최고의 선량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후보자간들의 경쟁 방식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린나이에도 그런 후보자들의 출마연설을 듣겠다고 뙤약볕 아래 학교 운동장을 찾아갔으니 참 당돌한 미래의 투표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당의 시장후보가 주최하는 주말 모임이라서 꽤 많은 수의 지지자들이 모일 것이라는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약 30여명의 사람들이 공원 한쪽에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중국커뮤니티에서 온 후원자들이었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브리즈번 남쪽 지역에 기반을 둔 노동당 국회의원들과 퀸스랜드주의 상원의원이었다.

그리고 잔디밭 위에는 후보의 사진이 들어있는 광고표지판 하나만 달랑 세워져있고 홍보지 한 장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탓에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중국커뮤니티가 정치로비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브리즈번의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인 써니뱅크(Sunnybank), 에잇마일 플레인스(Eight Mile Plains)와 런콘(Runcorn)은 아시안들 특히 중국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서 사는 동네이다. 내년에 그들이 지지하는 노동당 후보자가 브리즈번시장으로 당선된다면 그들이 어떤 로비 활동을 펼칠지도 사뭇 궁금해진다.

사람들을 불러 놓고 차려놓은 음식이란 큰 쟁반 두 군데에 수박을 잘게 썰어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거의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인도계로 보이는 한 지지자가 후원해준 치킨이 도착해서 한 조각씩을 먹었다. 검소해도 너무 검소하다싶을 만큼의 소박한 후원자들의 모임이었다.

노동당 소속의 시장 후보자는 현역 변호사이고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개인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상류층 출신인 셈이다. 하지만 그 후보자는 낡은 청바지에 셔츠를 걸친 수수한 차림새로 나타났으며 성실해 보이는 인상을 풍겼다. 그 사람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미소를 띠고 있는 겉모습과 시민을 위한 일을 꼭 하겠다는 약속에서 이미 많은 점수를 따 놓은 듯싶다.

나를 초대해준 여기자가 은근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은 지역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싶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시의원에 출마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한인회에서 활동하는 나에게 은근히 손을 내미는 소리처럼 들렸다. 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면 연회비가 25불이라는 귀띔까지 해주면서.

시장 후보자는 명함 한 장 내밀지 않고 자신의 웹사이트 주소만 알려주면서 방문해보라고 했다. 주 상원의원과 국회의원이 시장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추천발언과 격려사를 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시장후보의 웹사이트를 방문해보니 재미있는 정보들이 많았다. 후원금 모집 페이지를 보면 일반적으로 15불부터 250불까지 후원금을 받고 1,000불 이상을 후원받게 되면 공개적으로 밝힌다고 적혀있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12,800불 이상을 후원하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 돈의 출처를 밝히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는 충고도 적혀있어서 정당한 후원금만을 받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또한 후원금의 단위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같이 적혀있어서 흥미로웠다.

당신의 후원금액 50불은 보다나은 브리즈번을 위한 캠페인을 벌리는 자원봉사자들의 티셔츠 5개를 사는데 지불되고, 250불은 시의회가 기본적인 지역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1,000번의 전화비용으로 지불되며, 1,000불의 후원금은 수백 수천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페이스북의 광고비용으로 지불된다고 밝혀놓았다. 제법 건강해 보이는 후원금 정책이다.

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한국 정치인들의 후원금 내역도 이렇듯 시원하게 밝혀준다면 “그 후보자 대박이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과일 한 조각, 후원받은 치킨 한 조각을 나눠 줄 사람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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